“본회에서는 이미 위 상영관(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에 영화 상영을 중지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더 많은 교계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언론회’가 최근 한 교단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지난 14일 한겨레는 한국교회언론회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영화 <쿼바디스>의 상영중지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입수해 보도했다.(관련기사: “쿼바디스 상영 말라”…기독교계 ‘조직적 압력’ 드러나) <쿼바디스>는 한국의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영화다.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은 지난 4일 사랑의교회로부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받기도 했다.

<쿼바디스>가 겪고 있는 수난은 낯설지 않다. 그간 정치·경제·종교 등 권력을 비판하는 독립영화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고, 이때마다 외압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가 멀티플렉스 상영관 배정에 차별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영하는 독립영화 전용 극장에서 상영이 불허된 작품도 있다. 이러한 상영차별행위는 권력을 비판하는 독립영화의 제작환경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난 4일 '사랑의교회'가 <쿼바디스> 김재환 감독 앞으로 보낸 내용증명. 사랑의교회와 소속 목사가 나오는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외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의 상영관 배정에 차별을 한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외압 탓이든, 자발적 결정이든 멀티플렉스가 자의적으로 불편한 영화를 거른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천안함 사건의 의혹을 조명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지난해 9월, 개봉 이틀 만에 메가박스에서 상영이 중단됐다. 당시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성명을 내고 “정치권이나 정부당국으로부터 모종의 메시지가 흘러들어 갔는지, 아니면 상업적 이유 등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며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메가박스는 “상영을 중단하라는 보수단체의 협박이 있었다”며 외압을 인정했다. 

지난 10월 개봉한 <다이빙벨>은 롯데시네마와 CGV에서 단 하나의 상영관도 배정받지 못해 외압의혹이 일었다.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구조실패를 다룬 영화다. 해당 멀티플렉스는 <다이빙벨>은 상영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대관요청 또한 불허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다이빙벨>의 상영중단을 요구한 전례도 있어 외압논란이 일었다. 당시 롯데시네마 홍보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여러 상영 결정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우리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렸고, 그 이상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상업영화임에도 상영관 축소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월 7일 뉴스타파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극장 광고주인 삼성의 눈치는 보느라 상영관을 축소했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롯데시네마는 <또 하나의 약속>의 개봉 전 예매율이 전체 영화 중 3위였음에도 7개관만 배정했다. 당시 <또 하나의 약속>보다 예매율이 낮았던 ‘프랑켄슈타인’의 롯데시네마 상영관은 81개였다. 

   

▲ 멀티플렉스 혹은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극장에서 상영차별의혹이 제기된 독립영화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천안함 프로젝트>, <쿼바디스>, <다이빙벨>, <잼다큐강정>

 

 

지난 10일 개봉한 <쿼바디스> 역시 마찬가지다. 김재환 감독은 기자시사회에서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한겨레 보도를 통해 대형교회가 멀티플렉스에 압력을 넣은 사실이 밝혀졌다. <쿼바디스> 제작사인 단유필름의 한 관계자는 “한겨레 보도를 통해 대형교회의 외압이 사실로 밝혀졌다”면서 “제작진은 그간 멀티플렉스 상영관 배정상황을 보고 외압을 짐작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에 관한 상영차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앗아가는 행위일뿐더러 자본주의 시장논리에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압이 실존하는지 증명하는 것은 힘들지만, 소수의 대기업들이 멀티플렉스 시장을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들만 고르고 있는 것은 분명히 드러난 문제”라고 말했다. 

영진위 독립영화전용극장도 ‘상영거부’

국가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극장에서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독립영화의 개봉을 거부한 사례도 있어 영진위가 사실상 검열을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담은 영화 <잼다큐강정>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극장 인디플러스에서 개봉취소됐다. 당시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성명을 내고 “개봉 불가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요구하였으나 영진위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영진위는 뒤늦게 <잼 다큐 강정>의 상영을 허가했다.

지난 10월에는 <다이빙벨>의 인디플러스 개봉이 취소됐다. 당시 김하나 ‘인디플러스’ 기획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난 10월 16일 <다이빙벨> 상영계획을 영진위에 알렸으나 영진위 국내진흥부는 10월21일 ‘상영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구두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영진위 국내진흥부는 ‘인디플러스’에 보낸 공문에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논란이 분분한 상태이며 진상규명이 진행중인 상황이므로 공적기금으로 운영되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에서 상영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판단하고 있다”며 “영화 <다이빙벨> 상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독립영화 전용관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등 14개 영화 단체가 비판 성명을 냈지만 <다이빙벨>은 현재까지 인디플러스 상영관을 배정받지 못했다.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성명 이후 영진위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다”면서 “최근 문화연대가 <다이빙벨> 상영을 위한 대관을 요청했는데 영진위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지연 사무국장은 “<잼다큐강정>과 <다이빙벨>에서 보듯 국가기관인 영진위가 사실상 검열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CGV대학로점 앞에서 열린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멀티플렉스 불공정행위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규탄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상영차별, ‘표현의 자유’ 위축시킨다

이 같은 상영 차별은 독립영화의 제작환경을 악화시키며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지연 사무국장은 “멀티플렉스에 이어 영진위 직영 영화관까지 자의적으로 영화의 상영을 막고 있다”며 “이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를 제작하면 갖은 압박을 받는 일이 일상이 됐다”며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 제작이 위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 역시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들은 관객이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든 현실”이라며 “영화 제작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영화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제작환경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또 “영화는 다양성이 보장될 때 발전한다”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선 영화의 다양성이 죽을 수밖에 없고, 이는 한국영화의 발전도 저해한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문제해결을 위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영 감독은 “만일 영화관이 정치·경제·종교 등 권력으로부터 외압을 받았다면, 혹은 영화관이 특정 영화의 상영을 이유없이 차별한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무부처로서 ‘표현의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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