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0여개 초등학교에 배포된 국정교과서에서 350여개의 오류가 발견됐다. 특히 지난해 친일과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됐던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오류를 반복한 서술이 발견돼 논란이 예상된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9일 초등 역사 국정교과서 오류를 지적하며 교육부에 국정교과서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 

이번에 오류가 발견된 교과서는 2012년 8월부터 개발이 진행된 초등역사(사회 5-2) 교과서 실험본으로 초등학교 4학년들이 6학년이 됐을 때 배울 교과서이다. 실험본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사용되기 전 1년간 일부 학교에서 시험적으로 사용하는 교과서다. 오류는 △교학사 교과서와 유사한 서술 △일본을 주어로 한 역사 서술 △역사 왜곡 등으로 다양했다.

지난해 8월 30일 검정 통과돼 친일과 역사왜곡으로 문제가 됐던 교학사 고등학교 교과서와 유사한 서술이 그대로 들어간 부분이 발견됐다. 93쪽에 ‘의병 대토벌’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거나 94쪽에 ‘의병을 소탕하고자 하였다’는 표현 등을 사용해 일본 입장에서 서술했다. 96쪽에서는 식민지 당시 조선이 일본에 쌀을 ‘수출’한다고 서술했지만 ‘수탈’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런 서술은 모두 당시 문제가 됐던 교학사 교과서와 유사한 서술이다. 

국권침탈 과정에서 일본을 주어로 서술한 부분도 발견됐다. 실험본 교과서 92~93쪽을 보면  경찰권 장악, 을사조약·외교권 장악, 고종황제 폐위, 사법권 장악 등의 표현이 나왔다. 92쪽에는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대한 제국이 의지할 나라는 더 이상 없었다”며 을사늑약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알 수 없는 서술도 등장했다. 

   
▲ 실험본 교과서 92~93쪽. 경찰권 장악, 을사조약·외교권 장악, 고종황제 폐위, 사법권 장악 등 일본을 주어로 국권침탈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 = 역사정의실천연대 제공)
 

또한 실험본 교과서 93쪽에는 말풍선 안에 “일본은 대한 제국의 주권을 빼앗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사용하였나요?”라는 질문이 있는데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이 질문에 대해 “왜 우리 학생들이 일본의 입장에서 국권침탈시기(과정)를 학습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105쪽에 사진이 하나 등장하는데 실험본 교과서에서는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하는 학생들이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역사정의실천연대는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여학생이 아니어서 다른 저서에서는 평양기생이라고 표기한 경우가 많다”며 “유관순 사진과 비교해도 학생으로 보기 어려워 모호한 점 때문에 최근에 교과서에서 사용되지 않는 사진”이라고 지적했다. 

실험본 교과서 110쪽 하단에 여성 한국광복군 사진이 있는데 사진 출처도 없고 설명도 부족하다. 이에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여성광복군 지복영의 사진인데 신원불명의 여성광복군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며 “인터넷상에서 유사이미지를 검색해 사진출처도 확인하지 않은 채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명백하게 역사적 사실이 틀린 서술도 있었다. 146쪽에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18년 간의 유신체제가 끝나게 되었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박정희 정권의 존속 기간이 18년이었지 유신 체제가 18년간은 아니었다. 또한 113쪽에 등장한 사진에 ‘미영격멸’(米英擊滅,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승리하자)이라는 한자가 등장하는데 실험본 교과서 사진 설명에는 ‘미영격퇴’라고 표기한 오류도 발견됐다. 

역사적 오류 이외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같은 사진을 반복해 사용하거나, 고증을 거치지 않은 삽화, 독서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편집 등 교과서의 품질이 떨어진다”며 “무성의한 편집과 중·고등학교 수준의 엄청난 학습량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험본 교과서 93쪽과 95쪽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반복해서 나왔고, 15쪽에는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입은 옷을 국왕의 곤룡포(다홍색)로 그림을 잘못 넣기도 했다. 실제 조선시대 왕세자와 왕세손은 다홍색이 아닌 검은빛을 띈 아청색 곤룡포를 입었다. 

2014년 2학기부터 현장에 보급한 실험본 교과서는 2012년 8월부터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편찬 기관 공모가 이뤄져 약 2년간 개발 작업이 진행됐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같은 교육과정의 중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는 7개월,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는 1년 4개월간 준비한 것에 비하면 충분한 시간이었다”며 “(교육부에) 실험본 교과서를 회수하고 이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에게 사과하라”고 비판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교육부에 “더 이상 국정제로 교과서를 발행하지 않도록 교과서 발행 체제를 전면 재검토하라”며 “중등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교육부 교과서기획과 관계자는 “실험본은 아직 국사편찬위원회 등 전문가의 심의를 받지 않은 단계로 국정교과서 합격본이 아니라 기존교과서를 쓰면서 부가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며 “교과서 집필과정에 교육부는 관여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문제로 지적한) 의견을 심의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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