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이 블라인드처리 됐다면? 포털사이트가 해당 게시물을 ‘임시조치’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임시조치란 특정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요청이 있을 경우 30일 동안 블라인드처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임시조치는 정당한 비판을 차단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입법을 앞두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임시조치 개선사항이 골자다. 기존에는 임시조치를 당한 게시물 작성자의 이의제기가 법으로 보장되지 않았으나 개정안은 ‘이의제기권’과 그 절차를 법으로 규정했다. 임시조치 기간 중 게시물 작성자가 이의제기를 하면 포털 등 사업자가 해당 사안을 ‘온라인명예훼손 분쟁조정위원회’로 송부하도록 하는 절차규정이 생겼다. 

8일 국회에서 열린 ‘인터넷 분쟁과 임시조치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입법예고중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관한 점검이 이뤄졌다. 토론자들은 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임시조치 의무규정 ▲기업의 임의적 임시조치 감면 규정 ▲분쟁조정위원회의 역할과 구성 등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8일 국회에서 ‘인터넷 분쟁과 임시조치 개선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가연 사단법인 오픈넷 자문변호사는 개정안이 임시조치를 의무화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가연 변호사는 “개정안에는 임시조치가 의무규정으로 돼 있어 일상적으로 임시조치가 행해질 우려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의무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중략)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개정안에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팀장 역시 “개정안의 해당 조항은 포털 사이트에 필수적으로 임의조치를 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분쟁의 소지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임의적 임시조치에 대한 감면규정도 도마에 올랐다. 임의적 임시조치란 포털 등 기업이 임의적으로 임시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에는 정부가 아닌 포털 등 사업자가 임의로 임시조치를 취할 경우 별도의 면책규정이 없지만 개정안에는 면책권이 들어갔다. 김유향 팀장은 “포털 등 사업자가 면책권을 받게 되면 무분별하게 임시조치를 남발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선 다음카카오 이사 역시 “면책권 등 책임 감면조항을 두는 것은 사업자들에게 임의조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며 “사업자들이 임시조치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사적검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신설되는 ‘온라인명예훼손 분쟁조정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게시물 작성자의 이의제기가 있을 경우 분쟁조정위에서 조정절차를 거치게 된다. 분쟁조정위원회는 기존의 명예훼손분쟁조정부가 확대편성된 조직이다. 분쟁조정위는 30일 이내에 조정을 완료해야 한다.

   
▲ 전현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팀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전현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팀장은 분쟁조정위에 ‘다원적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현욱 팀장은 “개정안에는 분쟁조정기구의 ‘전문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10년 이상 경력의 교수, 법률가, 고위 공무원 등을 조정위원으로 명시했다”며 “이들은 다원적 전문성 측면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현욱 팀장은 “인터넷 게시물의 주된 이의신청자인 10대와 20대의 문화와 정서에 공감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입법예고안에는 분쟁조정위가 삭제 요청이 아닌 반박내용 게시 요청을 받게 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명시돼지 않았다”며 “입법 전에 다양한 상황에 따른 분쟁조정위의 임무와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카카오와 NHN측 토론자들은 포털사이트의 입장에서 분쟁조정위에 우려를 전했다. 이병선 다음카카오 이사는 “개정안은 포털사이트가 이의신청자를 대리해서 분쟁조정위에 대리접수를 하도록 명시했다”며 “분쟁조정위가 게시물 작성자와 이의신청자 사이를 중재하는데 굳이 포털사이트가 이의신청자를 대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병선 이사는 “신청 과정에서 포털이 이의신청자의 개인정보를 취급하게 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유출의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윤영찬 NHN이사 역시 분쟁조정의 주체가 사업자와 게시물 작성자 간의 조정으로 진행되는 점을 지적했다. 윤영찬 이사는 “실제 이의신청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중재가 진행될 수 있어 이의신청자의 방어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안이 이전보다 진일보했다는 점에는 토론자 모두가 공감했다. 황창근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개정안이 게시물 작성자의 이의제기권 신설을 통해 이전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보완 됐다”고 평가했다. 정경오 변호사 역시 “게시물 작성자의 이의제기권을 인정하는 것은 임시조치가 위헌의 소지를 덜고 합법적 조치가 되게 하는 핵심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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