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인권헌장 뭐 하러 만드느냐’고 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일 서울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서울시민 인권헌장 긴급 진단 토론회에서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시민위원회 안경환 위원장과 문경란 부위원장이 면담을 요청하고 서울시를 비판하자 박 시장이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느냐’고 했다”며 “박 시장 입에서 ‘인권헌장을 뭐 하러 만드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시 시민위원회는 지난 8월 6일 시민위원 150인과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 30인으로 구성돼 출범했고 지난달 28일 6차 회의를 거쳐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된 인권헌장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서울시는 인권헌장 표결처리는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이라며 인권헌장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런데 박 시장이 아예 인권헌장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서울시가 인권헌장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동성애 혐오세력의 반발에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시장의 발언은 논란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면담자리에 있었던 문 부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 소장의 발언 내용은 정확하지 않다”면서도 관련 발언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문 부위원장은 “더 이상 언론에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의 6.4 지방선거 포스터. 몽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지금은 우리 곁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위원회는 6차례 회의를 통해 45개 조항에 전원 합의하고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등 5개 조항에 대해 이견이 있어서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달 28일에 있었던 6차 회의에서 시민위원회가 의결에 돌입하려고 하자 서울시 공무원들은 문 부위원장의 마이크를 빼앗으며 의결절차를 방해했고, 그럼에도 시민위원회는 77명 중 60명 찬성으로 인권헌장을 의결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인권헌장이 표결처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사회적 갈등이 확산돼 헌장 제정목적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종걸 인권헌장 시민위원은 “의견으로 보기 어려운 편견과 신념에 근거한 혐오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고민이었다”며 “서울시가 혐오세력과도 합의하라는 것은 제정시민위원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한가람 변호사는 “나치 때문에 세계인권선언을 만드는데 나치와 합의할 수 없듯이 인권헌장을 만드는데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합의할 수 없다”며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권변호사의 상징인 박 시장 태도에 많은 변호사들이 들끓고 있다”고 말했다. 

배복주 인권헌장 전문위원은 “인권헌장은 시민위원회 6번, 분야별 간담회 9번, 권역별 토론 2번, 공청회 1번 등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결과물”이라며 “전문가들(전문위원)이 주도하기보단 동성애에 관해 잘 몰랐던 시민위원들도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가며 시민들이 이뤄낸 소중한 합의”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에 굴복해 인권헌장을 폐기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몽 무지개활동 활동가는 “지난 9월 29일 문화일보가 동성애입법반대국민연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민위원회 활동을 공격하자 서울시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관련 의견은 일부 시민위원들 의견’이라고 반박자료를 냈다”며 “단순히 성소수자들이 상처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서울시가 ‘혐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시민위원회는 1일 서울시에 △인권헌장 공표여부 입장 △표결 방해한 관계 공무원 징계 △서울시 보도자료에 대한 정정 보도문 등을 요구했다. 김 소장은 “서울시가 (시민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계인권선언일인 오는 10일 시민의 손으로 만든 인권헌장을 시민들이 나서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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