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66년을 맞은 국가보안법(국보법)이 사이버 상 북한 관련 게시 글에 대한 검열체계로 작동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이버 상 여러 단체들이 올린 북한의 정치·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개하는 글, 언론에 보도된 북한 정부의 입장, 역사적 사실로서 북한정치지도자의 항일 무장 투쟁 관련 글 등을 경찰로부터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어서다. 

일례로 서울신문이 지난 6~7월 김정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구두공장 및 과일농장 등 강원도 내 경제 현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논평 없이 전달한 기사들을 실었는데 경찰은 이 기사를 친북 관련 보도로 보고 지난 8월 26일, 해당 언론사에 삭제를 요청했다.

공안당국은 국보법 7조(찬양·고무)를 근거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 44조 7항(불법정보의 유통금지)에서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정보 제공자,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 정보를 삭제하도록 조치해왔다.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 2009년~2014년 8월까지 ‘친북’, ‘종북’ 표현물로 적발해 방심위에 삭제 요청한 게시물 수는 4643건이다. (자료 = 2014 국보법 적용 실태 보고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2014년 8월까지 경찰이 게시물 작성자, 관리자에게 요청해 삭제된 게시물 수는 20만6404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경찰이 ‘친북’, ‘종북’ 표현물로 적발해 방심위에 삭제 요청한 게시물 수는 4643건이다. 또한 방통위의 삭제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고발 조치된 게시물 수는 2009년~2013년까지 425건이다.

경찰은 국보법 7조와 정통망법 44조를 근거로 ‘업무협조요청’이라는 형식의 공문을 보내 정보작성자와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해왔다. 경찰의 이런 ‘업무협조요청’을 이행하지 않으면 경찰청장이 방통위에 해당 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한다. 작성자, 관리자가 방통위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수사당국은 이들을 형사재판에 회부한다.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더라도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동일한 사법절차는 반복될 수 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노동전선은 각각 2011년 초 자유게시판에 북한 관련 게시 글을 지워달라는 경찰의 업무협조요청을 받았다. 두 단체는 이에 응하지 않아 방통위에 고발조치 당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 결과에 따라 방통위 삭제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뒤 2014년 10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정록 활동가는 1일,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에서 “국보법 7조는 자의적으로 공안당국에 의해 휘둘러진다”며 “게시물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 민주적 기본질서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지 판단과 고민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지 북한과 관련된 의견이나 정보라는 이유 하나로 삭제 명령이 내려졌다”고 비판했다. 

   
▲ 2009년~2014년 8월까지 경찰이 게시물 작성자, 관리자에게 요청해 삭제된 게시물 수는 20만6404건에 달한다. (자료 = 2014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국보법 사건으로 기소돼 무죄선고가 나오자 해당 단체의 게시 글을 문제 삼아 재차 삭제를 요청한 사례도 있다. 2012년 초, 서울지방경찰청 등 6개 지방경찰청은 노동해방실천연대 게시판에 올라온 150여건의 글을 지워달라는 업무협조공문을 보냈다. 방심위 심의를 거친 후 방통위가 다시 삭제 명령을 내렸지만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경찰은 이 단체 회원 4명을 이적단체 혐의를 이유로 기소했다가 무죄가 나오자  같은 해 9월 다시 자유게시판을 문제 삼고 게시물 3개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게시물을 지우지 않자 수사당국은 작성자에 대해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기소 했다. 1심과 2심에서 벌금 300만원 형이 선고됐고 노동해방실천연대는 지난 10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언론사에도 게시물 삭제 요청이 있었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지난 8월 26일 서울신문에 ‘업무협조의뢰’라는 공문을 보내 친북 관련 글 6개를 삭제해달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경제 현장을 방문했다는 이 기사들은 이미 연합뉴스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던 내용이었다. 문제가 커지자 경찰은 일선 경찰의 미숙한 업무처리였다고 해명했다. 

정록 활동가는 “과거에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노동·농민 운동 등 거의 모든 민중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국보법이 기능했다면 최근에는 (사이버 상)북한 관련 사안으로 국보법 적용 범위를 좁히고 있다”며 “동시에 북한 관련 사안으로 국보법 처벌을 받는 일이 큰 문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상에서 북한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권 침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록 활동가는 “게시물 삭제 명령은 국보법이 사이버 상에서 작동하는 검열·처벌 체계로 기본권을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앞으로도 어떤 글이 어떤 기준으로 삭제되는지 수집하고 문제제기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2014 국보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 참여한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등 참가자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국보법 사건은 양적으로 매우 증가해왔고 80% 이상이 인터넷 공간에서 의견을 말한 사건들”이라며 “2014년은 국정원과 검찰의 서울시공무원 조작간첩의 여파로 사건 수는 줄었지만 공작의 정도와 정치 개입력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에서 국보법 체제는 질적으로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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