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방송 씨앤앰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시내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14일째를 맞는 25일,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 및 시민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씨앤앰 대주주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자택 앞을 찾았다. 씨앤앰 사태 해결에 김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서울 이태원동,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김 회장 자택의 ‘축대’는 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았다. 씨앤앰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이 시작되는 오전 11시 이전부터 자택 주변에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김 회장 자택 골목길 어귀에 ‘구조조정 중단하라’, ‘109해고자 원직복직’ 등의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붙였다. 이들이 장기를 발휘해 종이에 휘감긴 전봇대도 있었다. 경찰 2개 중대 160여명은 물끄러미 김 회장 자택 주변에 둘러앉아 있었다.

   
▲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 및 시민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25일 씨앤앰 대주주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자택 앞을 찾았다. (사진 = 김도연 기자)
 
   
▲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 및 시민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25일 씨앤앰 대주주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자택 앞을 찾았다. (사진 = 김도연 기자)
 

지난 7월 씨앤앰이 협력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새 협력업체는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노사상생을 목적으로 협력업체 변경 시 고용을 승계하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근절하자는 취지의 협약을 사실상 원청이 파기했다며 노조는 반발했다. 대주주이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씨앤앰 매각가를 높이려 노조와 조합원을 탄압하고 있다고 노동계와 정치권은 비판했다. 해직된 109명 모두 조합원이다. 

한 조합원은 ‘진짜사장 김병주 MBK 회장 찾기 운동 선포 기자회견’이라고 적힌 현수막에서 ‘김병주’ 부분을 발로 몇 차례 꾹 누르고 있기도 했다. “진짜 밉다. 김병주 정말 얄미워” 사회 각층에서 해고 노동자 복직에 대한 책임을 원청과 대주주 MBK에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에 대한 울분이 담긴 듯했다. 이들이 앉아있는 거리 사이로 ‘벤츠’,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들이 종종 지나쳐 갔다.

   
▲ 희망연대노조 한 조합원은 현수막에서 ‘김병주’라는 글귀 부분을 발로 몇 차례 꾹 누르고 있기도 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광진 좌파노동자회 서울위원회 위원장은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착취했길래 이렇게 높은 축대를 쌓았는지 모르겠다”며 “그가 자행한 투기와 노동 착취로 축대를 높이고 정원을 넓혀 온갖 귀한 것들을 집 안에 넣어 놨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았다면, 가입자를 늘리지 않았다면 김 회장이 이곳에 살 수나 있었겠느냐”고 했다. 

이형철 민주노총서울본부 본부장직무대행은 “돈 많으신 분들이 이 근처에 많이 산다고 한다”며 “그분들은 차를 타고 올라오기에 힘들지 않았겠지만 전철역을 타고 올라오면서 높은 이곳까지 올라야 할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느꼈다”고 전했다. 수십 Kg짜리 케이블 뭉치는 물론, 사다리와 장비까지 들고,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는 케이블 설치 노동자의 고단함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을까.

   
▲ 김병주 MBK 회장 자택. (사진 = 김도연 기자)
 
   
▲ 김병주 MBK 회장 자택. (사진 = 김도연 기자)
 

김영수 희망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장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역은 씨앤앰이 들어와 있는 지역”이라며 “씨앤앰 노동자들은 이렇게 높은 곳까지 힘겹게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케이블과 인터넷 등을 고치는 데 10년에서 20년 가까이 일만 했다. 우리가 정말 많은 걸 요구하는 것은 아니잖느냐”고 말했다. 

“진짜 사장 나와라. 끝까지 쫓아간다.” 200여 명의 함성이 공중에 울려 퍼졌지만 대문은 잠겨 있었다. 그가 집 안에 있는 지 확인하려 대문 앞까지 가봤으나 한 경찰이 “그만 찍으시죠”라고 말하며 막아섰다.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Mr. Michael B. Kim’에게 누군가 보낸 편지. 대문 안 현관문에도, 그 옆에 있던 농구장에도, 정원에도 인기척이 없었던 것은 매한가지였다. 

   
▲ 김병주 MBK 회장 자택 앞 손팻말에 휘감긴 전봇대와 스카이라이프 원형 안테나. (사진 = 김도연 기자)
 

김진규 희망노조 씨앤앰지부장은 “MBK 김병주 회장은 씨앤앰 대주주이면서 씨앤앰 상품은 쓰지 않고 스카이라이프를 쓰고 있는 건가”라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담벼락에 달려 있던 스카이라이프 원형 안테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김 지부장은 “씨앤앰 경영진 뒤에 숨어서 김 회장은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여론전만 펼치면서 해결책은 단 한 자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진짜사장’ 김병주는 국내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고 울분을 토했다.

 

 

 

   
▲ 이날 담벼락은 집회가 끝나자 경찰들 손에 의해 금세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 (사진 = 김도연 기자)
 

기자회견이 끝나자 조합원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손팻말을 김 회장 담벼락에 붙이기 시작했다. “일렬로 깔끔하게 붙일 필요 없어요. 마구 붙입시다.” ‘고용보장 확약하라’, ‘비정규직 대량해고 김병주 MBK 회장 규탄한다’, ‘구조조정 중단하라’ 등 김 회장 자택 담벼락은 일순간 이들의 요구가 담긴 ‘낙서장’이 돼 버렸다. 자신과 동료를 거리로 내몬 자본가에 대한 분은 조금 풀렸을까. 씨앤앰 노동자들의 집회가 끝나고, 담벼락은 경찰 손에 의해 금세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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