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게 아닙니다. 저희를 좀 봐달라는 겁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상영 중인 영화 <카트> 속 파업을 하던 모범사원 선희(염정아)가 외치는 말이다. 이 영화는 대형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기를 담은 첫 상업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노동자의 파업에는 ‘불편’이 따른다. 영화에서 대형마트 소비자들이 계산대 앞에서 노동자에게 따져 묻듯, 현실의 파업은 고통과 불편을 사회 구성원이 나누어 감내해야 한다.

   
▲ 20일 오후 2시,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종교인과 노동자들이 해고자 109명 복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3보 1배를 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20일 오후 2시,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종교인과 노동자들이 해고자 109명 복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3보 1배를 시작했다. 서울 시청에서부터 대주주MBK가 입주해 있는 광화문 파이낸셜센터까지 거리였다. 100여 명은 3보 1배로 선두에 서고, 나머지 100여 명은 “사모펀드 MBK 규탄한다”, “해고자부터 복직시켜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뒤따랐다. 

좁은 골목에서 몇몇 시민은 “차가 나아갈 수 없다”며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집회 참여자의 목소리를 유심히 듣는 외국인, 노동자들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노부부 등 3보 1배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 20일 오후 2시,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종교인과 노동자들이 해고자 109명 복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3보 1배를 했다. 무릎에는 덮개를 붙였다. (사진 = 김도연 기자)
 

마이크를 쥔 박대성 희망연대노조 조직쟁의국장은 “길 가는 데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이 노동자들이 왜 이곳에 모여 3보 1배를 하고 있는지, 무엇을 연호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주시면 참 고마울 것 같다”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3보 1배 취지를 설명했다. 

박 국장은 “씨앤앰은 5개 지역 109명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고 정규직·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정리해고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성실하게 임단협에 나올 것을 촉구한다. 더 이상 일만 하며 자본의 탐욕에 배제될 수는 없다”고 했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한 조합원이 20일 MBK파트너스를 규탄하는 피케팅을 하며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일방통행 차로에서 200여 명의 조합원들과 차량이 맞닥뜨리자 노년의 서울 파이낸셜 센터 인근 건물 경비원은 “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집회를 하냐”고 분통을 떠트리기도 했다. 그러자 한 조합원은 “파업은 원래 불편을 감수하고 하는 거예요”라며 “회사가 잘못해서 우리가 이러는 거”라고 밝혔다.

이날 3보 1배 집회에는 조계종 노동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덕본 스님과 노동위원 도철 스님이 함께 했다. 도철 스님은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고(故)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곁에서 30여 일 단식을 했다. 덕본 스님은 “불교에는 머리 두 개 달린 새 이야기가 있다”며 “먹을 것을 두고 갈등을 빚던 왼쪽 머리와 오른쪽 머리는 한쪽이 ‘독’열매를 먹고서야 죽음으로 갈등을 해결했다. 이야기의 교훈은 상생”이라고 말했다. 

   
▲ 20일 3보 1배 집회에는 조계종 노동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덕본 스님(왼쪽)과 노동위원 도철 스님이 함께 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덕본 스님은 “자본가가 자기 탐욕만 채울 궁리를 하면 사회는 병이 들기 마련”이라며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은 더 이상 노동자를 풍찬노숙케 하지 말고, 회개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여 명의 인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옆 전광판에 도달하자 20미터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임정균(38)씨와 강성덕(35)씨는 손을 흔들며 동료를 맞이했다. 

임씨와 강씨는 △해고된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109명 복직 △고용안정 보장 △매각과정 투명성 보장 및 정리해고 금지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며 지난 12일부터 고공농성 중이다.

   
▲ 200여 명의 인파가 20일 오후 3시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옆 전광판에 도달하자 20미터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는 손을 흔들며 동료를 맞이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3보 1배를 온전히 마친 후 김영수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장은 “태어나 3보 1배를 처음 해봤다”며 “안 쓰는 근육이 땅겼고 추운 날씨에 땀도 났다. 하늘에 있는 두 동료를 생각하면서 절을 했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랐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이 마음을 부처님이 받으셔서 우리 싸움에 승리를 안겨주실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780여 명도 이날 서울 ‘을지로 SKT타워’ 앞에서 노동법 준수와 고용안정 보장,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수도권 결의대회를 가졌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1천여 명은 오는 24일 집중 총파업을 예고했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780여 명은 20일 오후 서울 ‘을지로 SKT타워’ 앞에서 노동법 준수와 고용안정 보장,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수도권 결의대회를 가졌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1천여 명은 오는 24일 집중 총파업을 예고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780여 명은 20일 오후 서울 ‘을지로 SKT타워’ 앞에서 노동법 준수와 고용안정 보장,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수도권 결의대회를 가졌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1천여 명은 오는 24일 집중 총파업을 예고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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