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에서는 해병대전우회도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대신 옥천신문을 본다. 옥천 신문은 11월 14일 기준으로 4000부를 넘게 발송하는 지역 신문사다. 옥천군의 인구는 약 5만 명이다. 조선일보는 어떻게 옥천에서 쫓겨났을까?   

19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민주화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반민족언론청산 2014 연속심포지엄 ‘조선일보는 어떻게 해서 옥천에서 쫓겨났나?’가 열렸다. 이날 강연자는 오한흥 전 옥천신문 대표였다.

오 전 대표는 ‘조선바보’ 운동을 통해 옥천에서 조선일보를 몰아냈다. 조선바보는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의 준말이다. 오 전 대표는 “조선일보라는 범죄집단을 없애야 하는데 욕심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옥천에서만 했다”고 말했다.  

   

▲ 19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민주화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조선일보는 어떻게 해서 옥천에서 쫓겨났나?’가 열렸다.

 

 

오 전 대표는 지역 상인들에겐 친절한 손님이 됐고,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준말) 농장과 돈까스 집을 만들어 친절한 주인이 됐다. 그는 “주민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친구가 돼 신뢰를 얻은 뒤 조선일보의 ‘9.2% 이야기’를 꺼낸다”고 말했다. 

9.2%는 조선일보가 밝혔던 일제 치하에서 자신들이 썼던 반민족 기사의 비율이다. 오 전 대표는 “조선일보는 9.2% 밖에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스무살 청년이 군 생활 내내 범죄를 일으켰다는 것과 같은 얘기”라며 “내가 ‘신문으로 위장한 범죄집단 조선일보’라는 책도 냈다”고 말했다. 

오 전 대표는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조선일보라는 종이신문과 싸우기 위해 ‘물총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종이신문과 싸우는데 미사일을 쏴서 되겠나”라며 “물총을 쏘는 것이 종이신문에 가장 치명적이라는 생각에서 사이트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물총닷컴은 조선바보 운동을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지난 2000년 8월 15일 출범된 조선바보 시민모임은 정확히 2년 뒤에 ‘종전 선언’을 했다. 오 전 대표는 “한 집 건너 조선일보를 보던 옥천에 이제는 조선일보를 30부 정도 밖에 보지 않는다”며 “조선일보에서 조선바보에 업무 방해로 고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옥천신문은 지난 2001년 3월 17일 최영배 조선일보 옥천 지국장을 인터뷰했다. 기사에서 최 지국장은 “(내가)제출한 고소장을 조사하던 옥천경찰서마저 조선일보를 7부씩 구독하다 4부를 절독했다”며 “실제 조선일보 절독 부수는 충북지역 군단위에서 옥천지역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 19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민주화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조선일보는 어떻게 해서 옥천에서 쫓겨났나?’가 열렸다. 강연자인 오한흥 전 옥천신문 대표.
 

이런 우여곡절 끝에 옥천에서는 보수적인 모임 중 하나인 해병대전우회마저 조선일보를 보지 않게 됐다. 옥천은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보수적인 동네였다. 한겨레 창간호도 옥천에 지국은 설치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 전 대표는 “누구든지 조아세 농장에 놀러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난 들어준다”며 “친구가 됐을 때 일장기 밑에 조선일보가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누구든 조선일보 대신 옥천신문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오 전 대표는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안티조선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처럼 회의를 책상에서만 하지 않고 식당에서 소주병 놓고 즐겁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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