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매거진 2580>(이하 2580)이 지난 16일 쌍용자동차 사태를 재조명했다. 2580 취재팀은 대법원 판결(13일)을 기다리는 해고 노동자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담았다. 5년이 넘는 싸움에서 이들이 떠안게 된 상처와 한국 사회 비극을 담담하게, 하지만 의미있게 다루었다.

방송 이후 호평이 이어졌다. 이창근 쌍용차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MBC상황에서 쌍용차 아이템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이란 점은 분명히 안다”며 “그 노력과 눈빛, 우린 기억한다”고 했다. 이 실장은 “방송으로 또 한 번 노동문제 알려 준 점, 무척 고맙다”며 “아쉬운 부분은 우리가 채울 몫으로 남겨 달라“고 했다. 

   
▲ 지난 16일 방송한 시사매거진2580 ‘끝나지 않은 2천일의 비극’ 편. 이창근 쌍용차 노조 정책기획실장의 모습.
 

“쌍용차 아이템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

2580 취재팀은 16일 방영된 ‘끝나지 않은 2000일의 비극’ 편을 통해 5년 전에 이어 해고 노동자 고동민씨를 찾았다. 2580은 과거 쌍용차 파업 국면(2009년)에서 이들 노동자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에도 방송 3사 보도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고작 MBC <시사매거진 2580>과 정도만 이 사안을 주목했다.

5살이던 고씨 아들 이든 군은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 이든 군은 파업이 끝난 후 엄마 이외 사람에게는 격한 적대감을 드러낼 정도로 트라우마를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밝은 모습이었다. 이든 군은 여전히 아빠와 떨어지는 걸 힘겨워했다. “(아이에게) ‘오늘 저녁에 올 거야’ 그러면 좀 안심을 하는데 아직도 울어요. 그래서 마음이 짠해” 고씨의 말은 해고가 한 개인을 넘어 노동자 가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 지난 16일 방송한 시사매거진2580 ‘끝나지 않은 2000일의 비극’ 편.
 

2580은 파업 과정에서 가장 치열했던 ‘옥상 조립4팀’에 있다 고무탄을 맞고 기절해 하반신 마비가 온 최성국씨, 충격으로 여전히 정신병동에 입원 중인 계영대씨 사례를 통해 다수가 잊어 왔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지난한 삶을 보여줬다. 지독한 트라우마 속에서도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동료와 함께 했던 일터를 잊을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3일 원심을 뒤집고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경영 위기 상황이었고, 정리해고 규모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2580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대법원의 논리를 원심과 비교하면서 쌍용자동차의 입장을 차분히 들었다. 

   
▲ 지난 16일 방송한 시사매거진2580 ‘끝나지 않은 2천일의 비극’ 편. 이상구 쌍용자동차 법무실장.
 

이상구 쌍용자동차 법무실장은 2580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회계 조작설이라든가 기획부도 의혹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했다”며 “기업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판결로 쌍용차 정리해고의 법적 판단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논의엔 다시 불이 붙을 공산이 커졌다. 이제 또다시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이호찬 2580 기자 멘트)

2580은 방송 말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의 필요성을 부각하며 ‘정리해고’라는 시대가 직면한 비극은 시청자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임을 상기시켰다. 

공영방송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

이창근 실장의 말대로 지금 MBC상황에서 ‘쌍용차 사태’라는 아이템은 그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양국이 폐지되고, 간판 PD들이 뿔뿔이 비제작부서로 흩어진 암울한 상황 속에서 민감한 노동 문제를 공영방송에서 제작진이 다루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4대강 관련 업체의 담합과 비자금 문제 △ NLL 심층 취재 △ 삼성 노조 결성 △ 인혁당 피해자 유족 인터뷰 △ 국정원 관련 보도 등 그동안 2580에서는 민감한 주제의 아이템이 취재 불가 판정을 받거나 불방·축소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 지난 16일 방송한 시사매거진2580 ‘끝나지 않은 2천일의 비극’ 편. 해고 노동자 고동민씨.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권력이 아닌 약자를 대변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공영방송, 특히 MBC는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정권과 유착한 경영진은 더욱 구성원의 목줄을 조일 것이다. 이미 바른 말하던 이들 다수는 좌천됐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를 거둘 수 없는 까닭은 이처럼 여전히 내부에서 진실을 보도하려는 이들과 기사 한 줄에 목말라하는 배제된 자들 때문일 것이다. 

2012년 대선 전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국정조사를 약속한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방송에 오롯이 담기진 않았지만, 이번 방송은 공영방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시금 일깨워 줬다.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고동민씨의 마지막 말을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기억한다면, 정상화하는 날이 더 빠르게 찾아오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돈 말고도 더 중요한 가치들이 많으니까. 저희는 꼭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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