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경제 위기가 닥치자 지난해 6월 공영방송 ‘헬레닉 브로드캐스팅 코퍼레이션’(ERT)를 폐쇄했다. 2500여 명에 달하는 직원은 정리해고 됐다. 1년 후 새롭게 만들어진 공영방송 ‘NERIT’(New Greek Radio, Internet and Television). 평가는 어떨까. “정부 비판, 절대 하지 않는다.” UNI-MEI본부 요하네스 스튕거(Johannes Studinger, 독일) 국장의 말이다. 

1999년 국제 노동운동을 시작한 스튕거 국장은 2009년 8월부터 전 세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 140개 노조를 대표하는 UNI-MEI 분과 국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2012년 방송사 총파업 당시 한국을 방문해 파업을 지지하기도 했다. 스튕거 국장은 UNI-MEI 세계총회를 앞두고 한국 언론 현황을 살피기 위해 12일 방한했다. (참고 : 유니UNI는 국제사무직노조연맹 Union Network International 영문 약자. MEI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지칭한다.) 

   
▲ 12일 방한한 UNI-MEI본부 요하네스 스튕거(Johannes Studinger, 독일) 국장. 사진 = 김도연 기자
 

그는 기자와 인터뷰에 앞서 KBS, MBC, SBS 등 방송사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2014년 한국 언론 현주소를 파악했다. 그는 한국 언론을 ‘조용한 저널리즘’(Quiet journalism)이라고 규정하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권위주의 언론관을 크게 우려했다. 

UNI-MEI 집행위원회는 지난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 등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며 각 국에서 미디어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적극 지지했다. 

스튕거 국장은 “국민들이 미디어에 대한 소유의식을 갖게 하고 그러한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게 노동조합 역할”이라며 “UNI는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전 세계 미디어 노조에 한국 상황을 알려 국제 연대를 끌어내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행동을 계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일문일답.

- 한국 언론 상황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2012년에 방문한 적이 있다. 언론노조 산하 KBS, MBC, SBS의 최근 상황을 오늘 다 들었다. 다시 한 번 놀라운 건 한국의 언론 노동조합이 끊임없이 미디어의 다양성, 민주주의 그리고 독립성에 대해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노고와 사명감에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 한국 언론 노동자들은 관련 시민단체와 일반 국민들과 광범위한 협력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설명을 들어보니 상황이 점차 악화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국제 사회에서도 어떤 형태든 지원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지원 역할이 미흡하고 소극적이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할 생각이다.”

- 2012년과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다는 건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연이어 보수 정권이 미디어에 심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걸 절감했다. 공영방송 부문이 심각했다. 공정 방송을 탄압하는 건 큰 문제다. 세계적 현상이다. 특히 권력을 쥔 여당에서 좀 더 ‘조용한 저널리즘’(Quiet journalism)을 요구하는 식의 압력을 행사한다. 한국 역시 ‘조용한 저널리즘’이 가속화하고 있지 않나.”

   
▲ 2012년 4월 당시 UNI-MEI 의장 게리 모리세이 영국방송연예노조(BECTU) 사무총장과 UNI-MEI 요하네스 스튕거 국장은 성명을 통해 “해고·징계당한 MBC 노조의 동지들에게 연대의 뜻을 보낸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 그렇다면 언론 노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언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국민들과 협력이 중요하다. 미디어는 단순 소비재로 생각하면 안 된다. 미디어에 대한 소유의식(ownership)과 이에 걸맞는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게 노동조합 역할이다. UNI는 언론노조와 함께 전 세계 미디어노조에 한국 상황을 알려 국제 연대를 끌어내고, 정부를 압박하는 행동을 계획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12월 7일부터 10일까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제4차 세계총회 때 한국 언론 상황을 보고하고 특별 선언을 채택할 것이다. 전 세계 500여 노조, 대표단 3000여 명이 참석한다.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연대할 예정이다.”

- 다른 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조용한 저널리즘’을 강화하는가. 

“대표 사례가 그리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굉장한 긴축정책으로 남부 유럽 쪽이 대규모 시위를 많이 했다. 공공부문 지출 중단 측면에서 지난해 6월 그리스 공영방송 ‘ERT’를 폐쇄했다. 그러고 나서 1년 후에(지난 5월) 새로운 공영방송 ‘NERIT’를 차렸다. 평가는 매우 좋지 않다. 예산, 채널, 제작, 스태프 등 모든 부문에서 형편없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에 대해 절대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자본주의가 저널리즘을 어떻게 해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같다.

“쉬운 해결책(easy solution)은 없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요 미디어가 정보 독점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점이다. 보통 국민에게 더 많은 힘이 부여되고 있다. 정보의 축이 시민들 손으로 옮겨갔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최근 벨기에에서 10만여 명이 시위를 했다. 정부가 기업에는 세금 혜택을 주면서 노동자, 가족 수당은 삭감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30년 동안 벨기에 노총이 모았던 시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주요 미디어에서는 급진적인(radical) 200여 명의 경찰 충돌만 부각했다. 대규모 집회 자체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공정 보도와 민주주의 수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SNS를 통해서 현장 상황을 알리고 스스로 리포팅을 해 큰 호응을 이끌었다. 기존 언론이 갖고 있던 ‘독점력’이 무너진 사례였다.”

   
▲ 12일 방한한 UNI-MEI본부 요하네스 스튕거(Johannes Studinger, 독일) 국장. 사진 = 김도연 기자
 

- 언론 노동자는 어떻게 저항하는지 궁금하다.

“그리스 정부가 NERIT를 세운 후 전에 있던 노조들이 수개월 동안을 점거하고 반대했다. 그 결과 NERIT가 확산하지 못했다. 아테네 쪽에만 정부가 소유하고 있고, 테라로사 쪽 35개 라디오 스테이션은 노조가 장악하고 있다. 정부가 장악하는 규모가 줄어든 거다. 결론은 끊임없는 ‘저항’이다.”

-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 ‘점거’를 하면 바로 끌려간다.(웃음) 

“물론 한국 경찰이 더 무섭다.(웃음) 그리스 쪽은 저항이 너무 강해 경찰이 진압하다가 포기하곤 한다.”

- 독일에는 공정방송을 위한 장치가 어떻게 마련돼 있나. 

“독일은 미디어법, 방송법, 미디어컴퍼니법, 위원회 등 다층 장치가 있다. 전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독일은 공정보도 면에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양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그룹의 참여’에서 보면 뒤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과거 벨기에 언론은 노동조합의 당일 행동보다 다양한 활동을 더 주목했다. 독일은 상대적으로 파업 때만 조명한다. 언론이 그러다 보니 벨기에 쪽에 다양한 사람과 조직의 사회 참여가 보장되는 분위기가 있다.”

- 전 세계적으로 극우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언론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재 우리는 ‘공공과 민간 부문의 영원한 투쟁’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미디어뿐 아니다. 교육, 의료, 교통, 통신 등. 시장(market)이 공공재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아마 느끼고 있을 거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걸. 그래서 새로운 경제, 사회, 대안을 요구하는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나.”

“국가나 공공재가 제공하고 있는 ‘집단적 가치’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가치 축이 옮겨진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개인의 자유가 (시장에 의해) 되레 위축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노조는 이런 개인의 요구를 집단 행동으로 응집시키고 환원시키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

   
▲ 12일 방한한 UNI-MEI본부 요하네스 스튕거(Johannes Studinger, 독일) 국장. 사진 =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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