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물(전광판)이 계속 바람에 흔들리는 상황이다. 마땅히 잡을 것도 없다. 부는 바람에 몸이 확확 휘청거린다. 그러나 밧줄로 몸을 묶어서라도 투쟁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찬바람을 뚫고 두 노동자가 하늘에 섰다. 두 발을 땅에 딛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20미터 높이의 서울 시내 전광판으로 기어올랐다. 전광판 위에서 펼쳐든 현수막에는 “비정규직 109명 대량해고! 씨앤앰과 대주주 MBK가 책임져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해고자 109명은 원청과 협력업체(하청) 재계약 및 신규계약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거나 계약이 만료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다. 원청 씨앤앰은 해고자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업체 노사 문제”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소속 조합원 임정균씨와 강병덕씨가 12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 희망연대노조)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소속 케이블 설치 기사 임정균(38)씨와 지난 7월 협력업체에서 해고된 강병덕(35)씨는 결국 고공농성을 선택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이다. 129일 동안 지난한 노숙농성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혹독한 추위를 감내하며 극한 농성을 하고 있는 임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현재 상황(12일 오후 7시)은 어떠한가?

“날씨는 어제보다 더 추워졌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구조물이 흔들린다. 전광판 위에 올라갈 때는 될 수 있으면 끈 같은 걸로 몸을 묶고 올라가고 있다. 구조물 안에 다행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거기서 잠깐 쉬고 있다. 밑에서는 경찰과 동지들이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언제 강제 진압할지 몰라 조합원들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초코파이 등 일부 비상식량을 챙겨왔다. 어렵게 버티고 있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이 12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 밑에서 두 노동자와 연대하며 씨앤앰 대주주 MBK에 해고자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씨앤앰에서 어떤 일을 했나.

“작년 8월에 정규직 전환이 됐고 그전까지는 개인사업소득자로 일했다. 케이블 설치 업무를 했다. 정규직 전환을 하면서 (노동을) 더 배우고 싶은 욕심에 지부 전임자를 맡았다. JC비전(용산, 외주 협력업체)에서 있었다. 비록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진 않지만, 소위 건바이건 노동자(개인소득사업자로서 일정 비율 세금을 떼고 협력업체로부터 건당 수수료를 받는 기사)로 12년 동안 설치 업무를 한 것이다. 12년 동안 협력업체는 4번 바뀌었다. 근속 연수는 인정되지 않았다.”

- 고공농성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너무 답답했다. 원청 씨앤앰은 해고자 문제에 대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 뿐이었다. 대주주 MBK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거다. 종교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대주주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MBK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해고자가 거리에 내몰린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나. 해고자들의 생활은 점점 악화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사람도 있다. 씨앤앰과 MBK가 얼마나 나쁜 기업인지 알리고 싶었다. 우리 상황을 더 알리고자 올라왔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소속 조합원 임정균씨와 강병덕씨가 12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위험하지 않나. 바람도 많이 부는데. 

“전광판 안에는 쉴 공간이 있다. 그러나 구조물이 계속 바람에 흔들리는 상황이다. 전광판 위로 올라가면 중심이 계속 흔들려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거센 바람에 몸의 중심이 확확 흔들렸다. 그래서 이동할 땐 밧줄로 몸을 묶고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투쟁을 이어갈 거다.”

- 요구 조건은 무엇인가. 

“당연 109명 해고자 원직 복직이다. 또 그동안 조합원들이 받았던 정신적 피해, 물질적 피해를 보상 받고 싶다. 우리가 몇 억, 몇 천만 원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잖나. 대주주 MBK가 나서야 한다. 협력업체에 지급되는 수수료는 8년 동안 동결이었다. 그렇다 보니 협력업체에도 경영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고, 소속 노동자의 삶은 점점 말라갔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적어도 협의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해고자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한 MBK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이 12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 밑에서 두 노동자와 연대하며 씨앤앰 대주주 MBK가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씨앤앰 사태는 타 노동이슈에 비해서 주목을 받았지만 여태 사태 해결이 요원해 보인다. 

“MBK 김병주 회장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는 포스코 명예회장 등을 지낸 박태준 씨의 사위다. 김 회장을 포함한 자본가들의 탐욕이 극에 달했는데, 정부는 이를 눈감아주고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허술하잖나. 부조리를 모두가 아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외면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 밑에서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가족에게 미리 상의했어야 했는데,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가 여기에 왜 서야 했는지에 대해 소통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기적이었다. 너무 미안하다. 무사히 웃으면서 내려간다면 앞으로 더 잘할 것이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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