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포털에 ‘심장병’을 쳐 보자. 관련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믿을 수 있는 정보인가. 믿기 불안한가? 그렇다면 뉴스 소비자는 그 가운데 어떤 정보를 취득해야 하는가. 

의학 분야에 천착한 기자가 있다. 심재억 서울신문 기자다. 그는 의료계 정보 비대칭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심 기자는 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이기도 하다.

고(故) 신해철씨 이야기부터 꺼냈다. 기성 언론이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의학 파트를 모르는 기자들이 가십성 기사를 자꾸 확대 재생산한다”고 꼬집었다. 50대인 심 기자는 2000년 이전부터 의학·의료 파트를 맡아왔다. 전문기자 타이틀은 햇수로 9년째. 최근 신 씨와 관련해서도 단독 기사를 썼다. 그는 ‘패혈증’을 가장 먼저 주목했다. (관련 기사 : [단독]신해철, ‘패혈증’ 혼수상태…생명 위독)

그와 함께 의학 파트에서 한국 언론이 어떤 맹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폈다. 신해철 사태부터 황우석까지 그가 바라보는 언론과 의료 정보 비대칭 문제, 광고성 정보, 전문기자 육성 시스템 등을 고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사진 = 김도연)
 

- 故 신해철 씨와 관련해 단독 보도를 했다. 어떤 내용이었나. 

“기사를 쓸 때 신해철 씨가 아산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고, 그게 ‘장협착’이라고 병원 사이드에서 얘기가 나왔다. 단순 장협착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다면, 이는 위급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장협착은 협착을 회수하고 일정 기간 금식하면 끝나는 문제다.” 

“병원에서 밝힌 증상은 통증과 고열이었다. 협착에 의해서도 통증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발열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고열이 며칠 계속됐다는 건 체내에서 심각한 염증 반응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다. 사이드 취재를 하니까 패혈증이 상당히 진행이 돼 있었다. 천공이 이미 진행됐고, 염증 부산물이 전신에 퍼지고 복수가 차서 심장을 압박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국과수에서 부검하기 1주일 전이었다.”

- 패혈증을 다룬 기사들은 당시 없었나.

“많은 기자들이 패혈증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결국 국과수 부검 결과, 패혈증이 주된 사인이라고 밝혀졌다. 그 이전부터 신해철 씨를 위중 상태에 빠뜨린 치명적인 요인 하나가 ‘패혈증’이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심낭(심장을 감싸는 막) 천공은 직접적인 사인이 될 수 없다. 우리 장도 외피에 많이 쌓여있다. 이 외피는 격렬한 운동 만해도 찢어질 수 있다. 거기에 작은 구멍이 났다고 직접적인 사인될 수는 없다.”

- 신해철 관련 보도에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의학전문기자나 의학담당기자가 쓴 기사가 아니라서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게 아니겠나. 각 회사별로 의학 담당 기자는 숫자가 제한돼 있다. 그 숫자가 그렇게 많은 정보를 양산할 수 없다. 의학 파트를 모르는 기자들이 가십성 기사를 자꾸 확대재생산한다.”

“하나 더. 지금 의료정보보호법이 환자 개인 질환 정보 공개에 대해서 폭넓게 통제하는 취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신씨 정도 중량감을 가진 인사라면, (병원 측에서) 신뢰할 수 있는 브리핑을 해야 한다. 브리핑이 없었다. 공론화를 꺼려 수많은 오보, 추측성 기사를 만들어냈다. 언론을 나무랄 생각이 없다. 질병에 대해 병원이 실정법을 준수해야겠다 생각하면 가족 양해를 구하면 된다. 수많은 취재진들이 병원에 진을 치고 있는데 일언반구 말을 안 하면 추측만 낳지 않겠나?”

   
▲ 지난달 31일 고(故) 신해철 씨 발인날, 가수 윤도현 씨가 고인의 위패를 들고 있다. (사진 = 이치열 기자)
 

- 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의학 쪽을 선택할 때 기자들 사이에서 선호가 그리 높지 않았다. 편집국 안에서도 ‘의학’은 아무나, 잠깐 스쳐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우리 집안에 동생 두 명이 의사다. 여동생은 간호사로 지금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의학에 거부감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웃음) 나는 의대를 나오지는 않았다.”

- 회사에서는 의학 전담을 우려하지 않았나.

“2000년 전에는 문학을 담당하면서도 의학도 취재했다. 이후에는 의학을 전담했다. 회사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문기자제도가 활성화하지 않았다. 고로 전문기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 의학전문기자가 어떤 역할을 했나.

“전문기자제도가 도입되기 전 기자 시스템에서는 취재원이 거짓말을 해도 검증할 수 있는 지적 수준이 높지 않았다. 받아 적는 기사가 대부분이었고 옥석 구분이 쉽지 않았다. 전문기자제가 정착이 되고 나서는 (의료 쪽) 정보 기만이나 속임수 강도와 횟수가 크게 줄었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만이 독점적으로 가지는 정보가 있다. 환자들이 아직도 의사를 ‘선생님’이라고 하잖나. 높은 지위를 건강하게 향유하는 게 아니라 일부 의사들이 악용한다. 불성실하게 치료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지금은 많은 의학 정보를 소비자들이 안다. 속이기가 점차 어려워진 것이다. 의학전문기자들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본다.”

- 소비자가 왜곡된 정보로 피해를 본 사례가 있을까.

“‘관절염’을 놓고 보자. 이전에는 관절염이 회복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을 때, 당연히 수술하고 인공관절 끼우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자기 조직을 기계 조직으로 교체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불편은 기사에 담기지 않았다. 물론 인공관절이 삶의 질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통증이 ‘10’이라는 강도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예전 의사들은 5나 6단계에서 수술을 권유했고 실제 많이 했다.”

“약도 마찬가지다. 치료 목적 약이래도 모두 독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제약사가 부작용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의학 분야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기자가 나오면서 내부 문제제기가 치열해졌다. 지금은 제약사 측에서 임상시험 결과까지 자료 첨부해서 제공한다. 전문기자 정착이 도움이 된 사례다.”

- 특정한 병에 대한 풀이를 쉽게 하더라.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독자가 그 기사를 봤을 때 애매하지 않도록 써야 한다. 제한된 지면에서 정보를 모두 넣을 수는 없다. 독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중요도를 따져야 한다. 또 의학이나 약학 부문에 외래어가 많다. 그런 걸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 특별한 경우에는, 기사 끝에 용어 설명을 돕는 내용을 채워 넣기도 한다.” 

- 초기에 비해 관심 분야가 달라졌나.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주제, 일반화하지 않은 주제는 피했다. 그러다 보니 희귀난치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소외됐다. 그런 사람들은 정보 부족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쉽게 읽히는 기사를 골라 썼다면, 나중에는 희귀난치 질환에 대해 정보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 의학전문기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의학 쪽에 흥미를 가져야겠지.(웃음) 등 떠밀려서 의학을 맡게 되고 마지못해 기사를 발굴해서 취재하는 것은 전문기자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인터넷 백과사전만 펴도 정보가 나온다.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포기해야 한다. 인맥 핸디캡을 극복해야 한다. 의대 나온 사람들은 자기 의대를 중심으로 인맥을 갖는다. 나는 초창기 인맥이 없었다.” 

- 어떻게 취재원을 확보했나.

“의사들을 적극적으로 만났다. 10년 정도 매주 고정 2면을 채웠다. 지면을 채우려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야 한다. 의사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었다. 한 면은 인터뷰 면이었다.”

“기자는 의사들로부터 불필요하게 욕을 얻어 듣지 않아야 한다. 비판 기사는 써도 되나 오버하면 안 된다. 의사 설명이 부족하면 다시 물어야 한다. 기자에게는 입이 필요 없다. 귀만 있으면 된다. 많이 들어야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열정적이진 않다.(웃음) 게을러진 측면도 있지만, 기존 인맥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진 않고 있다. 그 분야 전문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은 구축했다. 현재 기사를 쓰는데 불편 없는 수준이다.”

   
▲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사진 = 김도연 기자)
 

- 외국은 의학 기사를 어떻게 보도하는가.

“외국과 한국은 다른 측면이 있다. 외국에서는 주요한 임상이나 연구결과 보도에 비중을 둔다. 새로운 질병 치료법을 주로 보도한다. SCI(Science Citation Index ; 과학논문인용색인)급 연구논문에 등재된 상당히 믿을 만한 정보 위주로 보도를 많이 한다. 새로운 팩트에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새 팩트도 중시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존 질병·질환 제약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다. 왜냐면 매체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외국이 우리나라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독자를 생산하려는 외국의 노력 아닌가. 그쪽은 기존 질병 정보는 이미 충분히 전달돼 있기 때문에 창의성을 갖지 않고는 새 독자층을 갖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신구 정보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 

- 한국 독자가 지닌 의학정보 수준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는 정보 접근성이 높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오염되고 왜곡된 정보들이 많다. 포털 사이트에 특정 질환을 검색해보면 정보가 수두룩 나온다. 수많은 스폰서 링크가 붙어서 나온다. 스폰서 링크가 전달하는 정보가 모두가 거짓은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오염 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옥석을 가리냐는 독자가 고민해야 한다. 아직은 그런 장치(필터링)가 마련돼 있진 않다.”

- 특히 예능 등 방송에서 의료 전문의가 나와 정보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듣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시간 기다렸다가 3분 만에 나오고. 독자들이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채널로부터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인터넷, 신문, 방송 등에 의존한다. 명백한 광고를 기사화하거나 방송 프로그램화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TV에 얼굴을 비추는 의사가 과연 최고인가 의심해야 한다.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의사들은 매스컴에 노출될 시간이 없다.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의사들이 전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수긍할 수 없는 의도를 갖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돈을 주고 방송에 나오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의사가 돈 주고 방송에 출연하면 무슨 얘기를 하겠나. 환자 질병을 더 심화하고 정보를 왜곡시킬 소지가 있다.”

- 여전히 의료 정보비대칭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심각하다. 이 시대 명의는 누가 명의인가. 환자에게 말을 많이 해주는 의사가 명의다. 잔소리라 해도 환자는 의사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진료를 한 뒤에 의사는 환자에게 진료 정보를 가능한, 충실하게 제공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말하는 것을 귀찮아하면 명의라고 할 수 없다. 환자에게 얻은 정보를 왜 의사가 독점해야 하나.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환자 진료를 통해서 얻은 정보는 환자에게 낱낱이 밝혀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가치에 부합하는 자세다. 한국 의사들은 지나치게 과묵하다. 중증 질환일 경우 더욱 그렇다.”

   
▲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지난 2005년 기자회견을 통해 윤리논란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줄기세포허브 소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사진 =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황우석 사태였다. 당시 어떻게 바라봤나.

“당시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다. 황우석 박사가 논문을 게재한 잡지는 외국 잡지다. 한국 기자들이 잡지에 접근해서 에디터나 관계자에게 정확한 멘트를 받기 어려웠을 거다. 외신 보도를 중심으로 취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그렇다 해도 명백한 사실이 아닌 바에야 기자는 무엇이든지 검증해야 한다. 대단하다고 다 진실은 아니잖나.”

“사안 규모와 임팩트에 언론이 취했던 게 아닌가 싶다. 기자는 냉철하게 검증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는 연구 논문이 나왔을 지라도, 이게 어떤 경로를 거쳤는가, 그 경로를 거치면 이게 가능한가, 검증을 해야 한다. 기자가 선동해 맹신적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은 제 역할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으로도 황우석을 너무 스타화했다. 허위 논문이 밝혀지기 전에도 연구에 몰두하게 했어야 했는데 온갖 행사,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서 그를 연구할 수 없는 연구자로 만들지 않았나.”

- 한국 전문기자 육성 시스템은 어떠한가.

“현재 언론재단에는 갓 입사한 기자들을 상대로 혹은 연차가 있는 기자 상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나 전문기자 프로그램은 없다. 전문기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다면 전문성 제고 측면에서 상당히 유익할 것이다. 한국의 모든 전문기자들은 공부를 스스로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공공기관, 예를 들면 언론재단 같은 데서 분야별 전문기자를 재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전문기자 정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심 기자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 한 말씀한다면.

“모든 기사를 의심해야 한다. 기자 실명으로 나간 기사라도 의심해야 한다. 내 기사도 전부 진실에 부합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기사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라. 그걸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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