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청년이 의자에 앉아 있다. 청년들 몸 곳곳엔 검은 폭탄이 붙었다. 폭탄엔 ‘수당없는 야근’, ‘계약직 차별’, ‘정규직 희망고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글귀가 쓰였다. 청년들이 쓴 가면 눈가엔 눈물이 흐른다. ‘블랙기업’으로부터 고통 받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나타낸 퍼포먼스다.

청년유니온과 민주노총이 청년들을 착취하는 ‘블랙기업’에 맞설 것을 선포했다. 이들은 9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블랙기업’이란 청년세대 사원들에게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뜻하는 용어로 일본 청년단체인 ‘포세’(POSSE)가 만든 개념이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선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일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해고통보 후 한 달 만에 목숨을 끊었고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30대 청년노동자도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며 “많은 청년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블랙기업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9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한국판 블랙기업 선포 기자회견’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이날 기자회견엔 20여명의 ‘포세’(POSSE) 활동가도 함께했다. 무로토미 사이지로 활동가는 “일본은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 사원이 많아지고 정규직 사원의 노동환경도 악화됐다”며 “특히 젊은 사원들이 쉽게 해고되는 일이 많아 블랙기업 운동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는 “블랙기업을 없애는 일은 국경을 넘는 보편적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양국 청년 노동운동의 연대를 발전시켜 젊은 노동자들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쪼개기 계약을 일삼고, 출근시간은 정해져도 퇴근시간은 따로 없는 블랙기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진걸 처장은 “블랙기업캠페인은 청년들의 희망 만들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정의까지 실현하는 소중한 캠페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김수영 변호사는 “청년들이 수습제도와 인턴제도, 비정규직으로 무한정 착취당하고 끝내 내다버려지는 일이 만연하다”며 “청년들이 조합을 만들고 블랙기업에 맞설 수 있도록 민변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은 블랙기업 제보사이트 개설을 시작으로 한국형 블랙기업지표 개발을 위한 연구사업을 실시로 이어질 예정이다. 2015년엔 ‘블랙기업’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상반기 중 ‘블랙기업’ 시상식을 열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늘 기자회견은 블랙기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닌 블랙기업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포세’(POSSE)와 함께 집회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일본의 블랙기업 운동을 한국에 도입할 것을 고민하는 와중에 일본 포세 활동가들이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하게 됐다”며 “이후 한국에서 함께 간담회를 하면서 연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9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청년유니온 활동가와 일본 ‘포세’(POSSE) 활동가가 함께 블랙기업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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