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북한 뉴스가 등장한다. 앵커의 목소리만 들으면 마치 전시상황 같다. 공격적이다. 때론 웅변을 보는 착각마저 든다. ‘톤 업 뉴스’로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얼굴이 된 엄성섭 기자(41)를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엄성섭 기자는 정치부 소속으로 청와대를 출입하며 <뉴스1>과 <뉴스4> 진행을 맡고 있다. TV조선이 강점을 보이는 평일 오후 시간대를 책임진다. 엄성섭의 톤 업 뉴스는 TV조선의 상징이 됐다. 미디어오늘이 그를 만난 이유다. 그를 통해 TV조선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6일 오후 TV조선 보도본부에서 만난 그는 톤 업 뉴스를 의도했던 건 아니라고 했다. “MBN(전 직장)에서도 방송을 꽤 했다. 여기서도 2012년 2월부터 방송했는데, MBN때처럼 했다. 그런데 제가 특보를 많이 들어갔다. 작년에 북한의 위협이 많아서 원고도 없이 올라가 속보 석 줄 가지고 방송 한 적도 있다. 프롬프트 없이 하다 보니 저도 정제가 안 되고 목소리 톤도 높아졌고 샤우팅이 나왔다. 이틀에 한 번씩 특보가 있던 때도 있었다. 당혹스럽다보니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젊은이들에 비해 청력이 좋지 않은 장년층을 겨냥한 것일까.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나도 방송 끝나고 VOD 보면 내가 왜 이랬을까 할 때가 있다. 전임 정치부장이 내게 소리 좀 그만 지르라고 한 적도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원래부터 하이(High) 톤이고, 철성(쇳소리)에 비음이고 성량이 크다.” 엄 기자는 “어렸을 때 웅변으로 전국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쑥스럽게 털어놨다. 그는 본인의 스타일이 북한 조선중앙TV처럼 호전적 톤이란 점도 알고 있었다.

   
▲ TV조선 프로그램 '속사정'의 한 장면. 엄성섭 기자의 '톤 업 뉴스'를 풍자한 모습.
 

그는 본인의 감정을 뉴스에서 드러낸다. 때론 화내고, 때론 웃는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에 비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엄 기자는 본인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나는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방송 문법으로는 좋은 앵커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내 모토는 솔직한 앵커다. 기존 앵커들이 중립을 가장해 불편부당을 내세우는 것은 솔직하지 않다. 저는 국민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국민이 공분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함께 공분한다. 앵커는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방송스타일도 바뀌어가고 있다. 회사 내에서도 지적이 있었지만, 이건 내 스타일이다.” 

그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은행 다니면서 방송국 시험을 쳤다. 기자가 된 후에도 열심히 살았다. KBS라디오에서 9년간 경제브리핑을 했다.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1년 간 손석희와 호흡을 맞추며 코너를 진행했다. TV조선으로 옮긴 뒤에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길 가다가 방송을 그만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를 닮았다는 얘기는 자주 듣고 있다고 했다. 

그에겐 한 때 ‘엄노예’란 별명이 있었다. 바쁠 때는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반까지 방송을 진행했다. 하루에 뉴스를 여섯 번 들어간 적도 있다. 태풍 특보 때는 스튜디오에서 김밥을 먹으며 다섯 시간을 연속으로 한 적도 있다. 대선 때 진행했던 토론회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30분을 넘기기도 했다. 피곤해서 자고 있다가 보도본부장이 빨리 가라고 해서 무슨 뉴스인지 모르고 올라갈 때도 있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내연녀로 알려진 임모씨의 가정부 인터뷰를 단독 보도할 때도 방송 5분전까지 내용을 전혀 몰랐다. 정신없이 특보와 속보를 도맡아온 삶. 그래도 그는 즐겁다고 했다. 

“TV조선은 한국의 폭스채널이 될 것”

엄성섭 기자는 TV조선이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을 대변하고 야당과 진보세력을 비난하는 편향적 매체라는 비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TV조선의 근저에는 보수 우파의 정서가 흐른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에 대해선 무조건적 지지가 아니라 그들의 정서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고 새정치민주연합이 갖고 있는 진보 좌파적 색깔에 대해선 비판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TV조선의 모습은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방송사의 방향성”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누구나 시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많은 매체가 다양한 시각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TV조선의 방향이 ‘한국의 폭스채널’이라고 강조했다. “TV조선이 보수우파의 정서가 흐르는 상황에서 폭스TV로 가는 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TV조선이 수구꼴통이라고 표현되는 극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폭스뉴스를 보면 인종차별‧성차별적 표현이나 사안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원사이드로 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 5·18 관련 방송에 대한 TV조선의 사과방송 장면.
 

하지만 지금까지 TV조선 뉴스를 떠올려보면 엄 기자의 설명을 쉽게 납득하긴 어려웠다. 종편 출범 직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포장하는가 하면, 지난해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난입할 때는 마치 스포츠 게임을 중계하듯 보도해 논란을 낳았다. 무엇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대규모의 북한 인민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단순히 ‘시각의 차이’로 넘어갈 수 없는 지점이다. 
 
엄 기자는 “일부, TV조선이 너무 심하다는 얘기는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초반에 박근혜 대통령 해외 순방을 다른 채널보다 많이 틀어줬다. 너무 그러는 거 아니냐는 내부 목소리도 있었고 (지금은) 그걸 반영해서 적절히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권 초반에는 박 대통령이 등장하면 시청률이 높게 나와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밖에서 잘못 보면 박근혜 뉴스라고 판단하게 되는데, 우린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시장적 접근을 했던 것”이라 해명했다. 

“TV조선은 보수 우파의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게 맞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과 통합진보당은 적이야, 이런 프레임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가서도 안 된다. 논쟁적 사안은 복합적이다. 우린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차를 보여주는 정도다.” 그는 TV조선이 진보적 의견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박지원 의원도 출연하지만 여전히 (야당 인사가) 출연을 꺼려하는 것 같다. 워낙 대선 때 정치적 입장이 갈리면서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TV조선의 강점은 시사보도…종편 4사, 각자의 길이 있다”

   
▲ 엄성섭 TV조선 기자. ⓒTV조선
 

엄 기자는 TV조선의 강점이 시사보도일 뿐, 종합편성을 포기한 건 아니라고 했다. “JTBC가 워낙 예능‧드라마를 많이 해서 그렇지, TV조선이 종편 중에선 JTBC 다음으로 많이 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편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남북녀>가 인기다.” 그는 TV조선이 종편이란 이름에 걸맞다고 자평하면서 “드라마‧예능이 성공해 시사보도와 균형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손석희 사장이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은 가끔 본다고 했다. “예전에 같이 방송할 때도 (손 사장을) 존경하면서 했다. JTBC만의 보도 색깔을 만든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종편 4사가 각자의 길이 있다. 편성전략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TV조선만의 편성전략을 이야기할 때는 북한 뉴스를 빼놓을 수 없다. 엄 기자는 “통일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라며 “언론은 북한의 실상과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 북한 정권의 이중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엄 기자는 TV조선의 강점이 특종과 집중력이라고 했다. “논란이 있든 없든 팩트를 가지고 대형 특종을 보여줬다. 여기에 TV조선만이 갖고 있는 집중력이 더해졌다. 우리는 하나의 이슈를 잡으면 아젠다 세팅을 제대로 해서 밀고 가는 힘이 있다. 이 힘이 시청률로 반영된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TV조선에 아쉬운 점은 없을까. 그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야 한다”며 “TV조선은 수구꼴통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며 볼 수 있는 채널로 발돋움했으면 좋겠다.” 그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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