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에 이은 MBC 인사발령 ‘후폭풍’이 거세다. ‘교육발령’을 받은 기자·PD 등 12명을 ‘가나안 농군학교’에 보낸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노동계는 물론, 주요 일간지도 4일 이런 행태를 “사적 보복인사”로 규정하며 MBC를 거세게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사적 보복인사 횡행하는 공영방송 MBC’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MBC는 이번 인사를 ‘조직 역량 강화를 위한 최적의 인력 재배치’라고 자평했지만 교육발령 12명을 포함한 120여명의 전보명단에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했거나 경영진의 전횡을 비판해 온 PD와 기자들이 대거 포함됐다”며 “MBC 노조·기자회·PD협회의 지적대로 ‘미운 사람을 찍어내려는 보복성 인사’라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MBC는 왜 이렇게 불필요한 잡음까지 일으키면서 논란을 자초하는 걸까? ‘밀실’, ‘보복’, ‘충성’ 이라는 키워드로 이번 사태를 정리해봤다. 

△밀실=최근 MBC 조직개편과 인사는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게 내부 구성원들 생각이다. MBC 내부 사정을 잘 아는 A 기자는 “사측도 ‘농군학교’가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몰랐던 것 같다”며 “외부와의 소통 없이 자신들끼리 조직개편과 인사 결정을 내리니까 외부에 어떻게 비춰질지 알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안광한 사장, 권재홍 부사장을 주축으로 밀실에서만 이뤄진 결정이 내부 문제를 작금의 사태까지 끌어 왔다는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본부·본부장 이성주)의 증언 역시 ‘밀실 인사’의 심각성을 증명한다. 이들은 4일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설 부서들은 지난 주말 당장 사무실을 구하고 가구, 비품을 마련하느라 쩔쩔맸다”며 “부서장들도 신설 부서의 비전과 목표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조직을 일단 만들고 할 일을 찾는 격이며 이는 ‘밀실’에서 ‘졸속’으로 논의한 결과 나타난 비정상의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 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현업 단체들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신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MBC 경영진의 ‘교양제작국 해체’와 '보복성 인사' 단행을 규탄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고위 간부를 제외한 사측 인사들도 애초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신인수 변호사는 “MBC노조의 업무방해 혐의 관련 형사소송 재판에서(참고: 1심에서는 업무방해혐의 무죄판결, MBC본부 승소) 당시 김현종 교양제작국장에게 ‘교양국을 폐지하는 것이냐’고 물었고, 그는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며 “교양국장 모르게 폐지한 것이라면 졸속, 밀실 개편의 명백한 증거이고, 그게 아니라면 교양국장은 위증죄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국장은 지난달 중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보복=이런 결정은 곧 사측이 불편해하는 교양국 PD에 대한 ‘보복성 인사’로 이어졌다. ‘농군학교’라는, 사실상 유배지로 각종 상을 휩쓴 이우환, 이춘근 PD를 내몰았다. 또 영화 <제보자>의 주인공 한학수 PD와 조능희, 이근행 PD 등을 비제작부서로 발령했다.

한 방문진 여당 이사는 기자에게 “현재 MBC 경영진은 회사 방향과 맞지 않는, 소위 ‘말 안 듣는’ PD·기자들을 어떻게 조치하고 교육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2012년 MBC본부가 주도한 ‘170일 파업’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에게 불합리한 인사 발령과 교육명령을 내린 것처럼, 이번 인사도 ‘보복’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영하 전 MBC본부장은 “자신들의 말에 순종할 사람만 끌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치졸한 개편, 인사를 통해 탄압 당하는 기자·PD들이 MBC를 박차고 나가는 걸 고대하고 있는 게 현 경영진”이라고 설명했다.

△충성=언론사에 기록될, 전무후무한 ‘170일 파업’이 끝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파업에 참여했던 다수 기자와 PD가 제작 일선에서 떠나고, 노조의 동력도 침체된 상황을 고려하면, ‘보복’만으로 MBC의 모든 행위가 설명되긴 어렵다.

최승호 PD는 “구성원들이 저항할 동력이 남아있거나 사측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수단이 있는데 MBC가 이러면 설명이 가능할 텐데 아시다시피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결국 안광한 사장이 쥔 권력이 불안정해서 나타나는 증상 아니겠나. 내부에서 차기 사장을 두고 외부에 호소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가올 주총도 불안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 여당을 향한 ‘충성’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무너진 공영방송 MBC와 지쳐가는 내부 구성원의 싸움.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와 다수 국민도 MBC를 외면한다. 정영하 전 본부장은 “MBC는 더 망가지든 다시 살아나든, 결코 사라지지 않을 언론사”라며 “따라서 버텨야 한다. 수모를 겪더라도 동료들이 끝까지 저항하고 뭉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국민들도 돌을 던지려면 확실히 던져야 한다”며 “외면하지 마시고 끝까지 비판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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