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자수첩으로 다시 인사드리는 김도연 기자입니다. 3일 오전, 차마 웃지 못할 기사를 썼습니다. MBC 조직개편에 따른 인사로 ‘교육발령’ 대상 기자·PD들을 ‘가나안농군학교’로 입소시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거 MBC가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 ‘170일 파업’에 참가한 기자, PD 등을 대상으로 ‘브런치 만들기’, ‘요가 배우기’ 등 업무와 동떨어진 교육을 서울 신천동 MBC 아카데미에서 받게 해, 시청자들이 그곳을 ‘신천교육대’라고 부르며 조소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관련기사① : MBC ‘교육명령’ 기자·PD 대상으로 “농군학교 입소하라”>
<관련기사② : ‘제보자’ 한학수 등 교양국 PD 대대적 비제작부서 발령>
<관련기사③ : MBC, 기자까지 드라마‧예능 마케팅부서로 발령>

   
▲ 안광한 MBC 사장.
 

사실 이번 인사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습니다. 방문진의 한 이사가 사석에서 “현재 MBC 경영진은 소위 ‘말 안 듣는’ PD‧기자들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을 뿐더러, 지난달 말 MBC는 “수익성”, “효율성”을 내세워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했었지요. ‘마케팅부’ ‘사업부’가 신설돼 조직개편에 뒤따른 인사배치로 사측이 불편한 기자들과 PD들을 ‘유배’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양국은 해체됐고, PD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영화 <제보자>를 아시는지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윤민철 PD(박해일)는 MBC 한학수 PD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MBC 안팎으로 취재‧제작 실력을 인정받았던 한 PD 역시 이번 인사로 비제작부서 신사업개발센터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신이었던 이춘근, 이우환 PD는 교육을 위해 ‘가나안 농군학교’로 떠나야 하고, 김재영, 조능희, 이근행 PD 등 유능한 PD들은 편성국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드라마·예능마케팅부로 떠나야 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현재 MBC의 ‘막무가내식’ 인사를 딱히 막을 길은 없습니다. MBC 대주주이자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의 책임이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이사장 김문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 방문진 이사들은 ‘묵묵부답’입니다.

여당 방문진 이사들은 3일 기자‧PD들을 향한 MBC의 보복성 인사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방문진을 대표하는 김문환 이사장은 이 사안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여당 추천 이사는 “국장급 이하 인사에 대해서는 사장 전결 사항”이라며 “이 경우 보통 사후 보고 형식으로 처리를 한다”고만 설명했습니다.

입장 표명에 소극적인 모습인데요, 제가 알던 방문진과는 사뭇 태도가 다릅니다. 잠시 시간을 지난해 1월로 돌려 봅시다. MBC는 당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와의 대담 <특집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을 긴급 편성했습니다. MBC 내부에서는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의 압박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고영주 감사와 김광동 이사 등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은 2012년 9월 이사회에서 2003년 편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고, 해당 방송의 제작과정에 대한 경과보고 의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개월 뒤 이사회에서는 해당 방송을 ‘불공정 편파방송’으로 규정하고, 사과방송이나 추가보도와 같은 시정조치를 요구했다고 알려져 논란이 됐죠. 김광동 이사는 지난해 2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MBC 방송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김현희씨에게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프로그램 개입 논란으로 따가운 눈총을 한 몸에 받은 이사들이 작금의 사태에서는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보다 공공성을 고민해야 할 이사들이 ‘방송 사유화’부터 생각한다는 세간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겠죠. 이중 잣대인 셈이죠.  

   
▲ 김문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문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말도 바뀝니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21일 방문진 등에 대한 미방위 국정감사에서 “(교양제작국 폐지에 대해) 아직 검토 중으로 결론이 안 났다”고 말했는데, 24일에는 “거의 몰랐다”며 엉뚱한 답변을 했습니다. 답답한 답변에, 정호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체 방문진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저도 궁금합니다. 방문진이 하는 일.

야당 이사들은 어떨까요? “기자와 PD들을 현업과 관련없는 부서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 숱하게 지적했지만 MBC는 전혀 듣질 않는다”고 한 야당 이사는 토로합니다. 다시 말해 여권과 야권의 힘이 6:3으로 일방적인 구조에서는 야당 이사가 목소리를 내도 MBC가 외면하면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여당 추천 이사 6명이 똘똘 뭉치면, 반대 의견은 묵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구조 탓, MBC 경영진 탓만 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방문진 이사로 임명한 것은 아니겠죠. 아무것도 안 하면서 꼬박꼬박 해외 출장을 가고, 돈을 또박또박 타 가는 걸 국민들이 언제까지 인내할까요. 

MBC에서 해고된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인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의 말대로 수수방관만 해서는 나아질 것이 없겠지요. 그건 야당의 무능력만 인증하는 것이니까요.

“안광한의 MBC가 또다시 대학살극을 저질렀습니다. 거칠 것이 없네요. 이것도 7.30 선거 후과일 것입니다. 야당 눈치볼 것 이제 없으니 보란듯이 재기 가능성을 다 잘라버리겠다는 것이죠. 국회 야당의원들과 방문진 야당 이사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내부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우린들 뭘 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변명만으로는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습니다. 야당은 지금 MBC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들의 무능, 무기력이 사람들을 다치고 죽게 하고 있습니다.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