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소통이자 국가 지도자가 자신의 정책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설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언론은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이 충실하게 반영됐는지 따져보고 그렇지 않다면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관련 언론보도가 연설 내용에 대한 비판보다는 국회의원들이 박수를 몇 번 쳤는지, 기립을 했는지 등의 행태를 중심으로 다뤘다.

   
▲ 10월30일자 조선일보 3면 <野, 대통령 입·퇴장 때 대부분 일어나 예의 갖춰>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자 3면 <野, 대통령 입·퇴장 때 대부분 일어나 예의 갖춰>에서 소제목을 ‘40여분 연설 중 27번 與만 박수, “문희상 박수칠 대목 없었다”’로 뽑았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40여분 대통령 연설 중 의석에선 모두 27번의 박수가 나왔는데 야당 의원들은 동참하지 않은 ‘반쪽 박수’였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3면 <문희상 “개헌도 골든타임 있다”…박 대통령은 미소만>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에 앞서 열린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30분간 모두 27번의 박수가 나왔다”며 “‘더 나은 국가살림을 만들어 다음정부에 넘겨줄 것’이란 대목에선 박수 소리가 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3면 기사 소제목에서 “37분간 박수 27번…작년엔 33번”라고 보도했다.

평소 조중동과 '다른 논조'를 보였던 경향신문도 이날 3면에서 기사 제목을 <여 의원들 27번 박수…야는 무표정 환대>로 뽑았다. 경향은 이 기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기립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도했다. 경향은 “대다수 야당의원이 일어서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야당의원 대부분이 기립해 일부 박수를 보냈다”며 “작년 같은 냉기나 퇴장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날 박수 횟수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았다.

   
▲ 10월30일자 경향신문 3면 <여 의원들 27번 박수…야는 무표정 환대> 기사 갈무리.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신문방송학)는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연설을 보도하는 방향이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며 “연설 내용에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어딘지에 대한 분석은 별로 없고 분위기만 전하는 것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도란 박 대통령에게 박수 받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의도를 말한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이 지나가자 여당의원이 기립해서 인사하는 국회의 모습을 사진으로도 전했다. 최 교수는 “여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여당의원들은 기립하고 몇몇 야당의원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의 없어 보이게 하려는 의도”라며 “야당의원이 대통령 발언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예의 차원에서 박수를 쳐주거나 기립할 수도 있고, 대통령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서 박수를 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수나 기립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방식으로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방송사들의 보도도 이들 신문사들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는 시정연설이 있었던 지난달 29일 MBC '뉴스데스크' <박 대통령, '경제' 59번 언급…여야 엇갈린 반응>에서 “30여 분간의 연설에서 여당 측에서 29차례 박수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KBS는 같은 날 '뉴스9'에서 “40여 분 계속된 연설은 28차례 박수를 받았다”고 보도했고, JTBC도 이날 ‘뉴스룸’에서 <연설 동안 '경제' 59차례 언급…'세월호' 말도 안 꺼내>에서 “박수는 연설하는 동안 모두 28차례 나왔다”고 보도했다. SBS는 ‘뉴스8’에서 박수 횟수 보도를 하지 않았다.

   
▲ 10월29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이번 2015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기본 방향을 설명하고, 공무원연금 개혁 연내 마무리,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 등을 국회에 요구했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문제가 언급된 중요한 연설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1일 발표한 논평에서 “국민이 정말 궁금해 하는 것이 ‘박수가 몇 번 나왔는지’, ‘누가 박수를 치고 누가 치지 않았는지’일까”라며 “박수나 세어보고 있는 대신 기자의 역할은 주요 현안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은 연설 내용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임을 과연 모르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햇다.

민언련은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거나 국회의원들의 몇몇 행동을 전달하기”보다는 “예산안에 대해 질문하고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 남북관계, 개헌론 등에 대한 내용이 전무하다는 것에 대해 심도 있게 반론하거나 비판하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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