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됐다.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6’ 가격이 1일 밤 정상판매 가격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1101 아이폰6 대란’(아식스 대란)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아이폰6가 출시된 지 하루만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에대한법(단통법) 이후 소비자 간의 부당한 차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법 시행 한 달 만에 대란이 발생했다. 아이폰6를 예약해서 구매했던 소비자들은 호갱(호구+고객)이 된 셈이다.

아이폰6의 출고가는 16GB 모델이 78만9800원, 64GB 모델은 92만4000원, 128GB 모델은 105만6000원이다.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이 30만원(판매점 보조금 포함시 34만5000원)으로 상한선이 정해지면서 실제 대부분 최신 휴대폰의 보조금은 10만~20만원 정도다. 아이폰6의 경우도 이 정도의 보조금이 책정됐다.

하지만 주말 늦은 시간인 지난 1일 밤, 수도권 곳곳에서는 아이폰6 16GB 모델이 단말기 할부원금이 17만원까지 낮아져 거래됐다. 당일 페이백(국가가 정한 범위 안에서 보조금을 주고 추가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편법) 44만원 등 다양한 혜택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날 대란에 참여해 긴 줄을 섰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아이폰6를 10~20만원 수준에서 구입했다. 아이폰6 예약판매를 한 소비자들이 16GB 모델, 8만원대 요금제를 사용한 경우 64만원에 구입한 것에 비해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가격이다.

   
▲ 아이폰6 대란이 일어난 1일 밤, 서울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에 아이폰6를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한 트위터 누리꾼)
 

휴일인 2일 오전까지 아이폰6 할인은 계속됐다. 미디어오늘이 방문한 서울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은 아이폰6를 이날 오후 1시까지 LG유플러스로 개통하면 공짜폰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아이폰6 16GB 모델 출고가는 약 78만원인데 법정 보조금 15만원 지원, 대란의 원인이 된 페이백 30만원 그리고 제로클럽으로 34만원을 할인하면 단말기 가격이 없어진다.

물론 제로클럽은 18개월 뒤에 아이폰 단말기를 반납하는 것이라 할인이 아닌 셈이다. (관련기사 ‘조삼모사’ 아이폰6 요금제 어떻게 사도 ‘호갱’…부글부글 ) 하지만 제로클럽을 제외하더라도 아이폰6 구매가는 약 31만원이었다. 판매점 직원은 “대란은 이날 오후 1시까지”라는 통신사에서 온 문자를 보여주며 “이 시간이 지나면 법정 보조금밖에 지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신사에서 과다하게 리베이트(통신사에서 대리점·판매점에 주는 판매지원금)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날 한 판매점의 경우 아이폰6 16GB 모델의 경우 LG유플러스 101만원, SKT 93만원, KT 88만원의 리베이트가 내려왔다. 리베이트는 판매점마다 다르게 내려오지만 주말사이 대부분의 판매점에 리베이트가 70만원 이상 내려왔다.

휴대전화 가격정보 사이트 피피넷 표영진 대표는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보조금만 규제하고 판매점은 휴대폰 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리베이트가 많이 내려올 때마다 이런 대란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판매점이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고객마다 할인을 달리 해줄 수 있고 사실 예견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단통법 비웃는 ‘페이백’, 못 받으면 ‘호갱님’?)

통신사는 통신요금인하를 하지 않고 리베이트를 통해 판매점이 고객별로 보조금을 달리줘서 영업실적을 올리는 방식을 택해왔다. 이런 지적에 대해 KT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 유통구조에서 대리점·판매점은 판매촉진비가 없으면 사실상 영업이 어려운 상태”라고 해명했다. 표 대표도 “통신사에서는 리베이트를 대리점·판매점 가지라고 준 것이지 누가 고객에게 주라고 했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애플 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이번 대란이 일시적으로 단통법 때문에 휴대폰이 비싸다는 불만을 잠재울 요소로 작용할 수 가능성도 있지만 소비자 차별에 대한 불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리베이트는 통신사에서 판매점으로 보낸 준 돈이다. 아이폰6의 제조사인 애플은 장려금을 이렇게 많이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 대표는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폰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아이폰에서 가격이 먼저 떨어지면 제조사들도 출고가를 낮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며 “결국 단통법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고 소비자 간 부당한 차별도 지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 임서우 사무관은 지난달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페이백 신고가 들어오고 있어 시장에 행정지도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통신사도 당장 답답해서 리베이트를 내려 보낼 뿐 보조금 규제를 강화하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안정화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11월 1일부터 행정지도를 넘어 강력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힌 정부를 비웃듯 1일 밤 이른바 '아식스 대란'이 발생했다. 단통법이 무력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피넷 표 대표는 “결국 대리점·판매점의 마진을 규제해 판매점에서 소비자들에게 휴대폰 가격을 오픈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커피전문점마다 커피 가격이 다르더라도 메뉴판을 보여주고 소비자에게 선택하듯이 판매점마다 휴대폰 가격이 다를 수는 있지만 가격은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지 않으면 대란은 또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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