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공시제가 무산된 채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제조사·통신사·정부까지 한 목소리로 법 시행초기니 지켜보자는 의견만 내놓았다. 이들은 통신비용이 절감되지 않고 이용자 간 가격차별이 벌어진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데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주최한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한 통신정책 방향 모색 라운드테이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단통법에 문제가 많다며 투명한 요금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충돌했다.

장정환 삼성전자 상무는 “단통법이 처음 논의될 때 분리공시가 논의된 것이 아니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고시를 만들 때 느닷없이 도입된 제도”라며 “법 시행 이후 문제가 있으니 화살이 분리공시로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리공시제도 삭제의 근거가 된 단통법 12조 1항 단서는 삼성전자의 요구로 포함된 조항이다. 삼성전자는 단통법이 처음 논의될 때부터 분리공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또한 장 상무는 “제품을 살 때 원가를 알고 사는 경우는 없다”며 “단말기별로 제조사 지원금이 얼마인지 소비자들이 알 필요가 없고 기술혁신이나 원가 절감을 통해 제품가격을 낮추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분리공시제가 없는 단통법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 류제명 과장도 “(현재)지원금이 낮아서 국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은 안다”고 했지만 “고착화된 유통관행을 바뀌는 과정에 있는 것이니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상헌 SKT 상무도 “법이 하루아침에 시행됐다가 폐지될 수 없다”며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명현현상인데 이를 다시 처방하려 들면 병을 치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주최한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한 통신정책 방향 모색 라운드테이블' 토론회가 열렸다.
 

일방적인 보조금의 변화로 10월 초에 휴대폰을 구입한 소비자는 월말에 구입한 소비자보다 약10만원의 요금을 손해 본 셈이다. 이승신 건국대학교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는 매우 중요하다”며 “분리공시제도를 통해 소비자가 가격 구조에 대해 투명하게 알아야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분리공시제를 통해 소비자의 알권리와 합리적인 선택을 보장하자는 것이 단통법의 애초 취지였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지금 가격이 공시되고는 있다는데 소비자들은 어디 공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요금제에 따른 보조금도 복잡한데 소비자들이 알기 쉽도록 통신사들이 공시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통법 이후 판매점마다 요금제별 보조금 표가 비치돼 있지만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손금주 변호사는 “단통법을 만들면서 정부나 국회가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듣고 규제 비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정부와 사업자들은 여전히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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