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디자이너들은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월급은 30~60만원 밖에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디자이너 D씨는 패션업계 관계자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고 있다. 주로 디자이너 지망생들이나 신입 디자이너들이 D씨에게 내부 노동착취 문제를 알린다. 그가 패션업계의 ‘창구’가 된 계기는 ‘패션노조’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1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패션노조 퍼포먼스’를 열면서다. D씨는 패션업계의 만연한 노동착취를 알리겠다는 취지로 이 같은 일을 시작했다. 

D씨는 미디어오늘과 전화 인터뷰에서 “패션업계 전반에 노동착취가 일상화 됐다”고 밝혔다. 남성복, 여성복, 구두, 가방 등을 막론하고 패션계 전반에 착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D씨는 “신입 디자이너들은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월급은 30~60만원 밖에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업체 뿐 아니라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대중들도 익히 아는 디자이너의 회사에서도 이 같은 제보가 잇따른다”고 덧붙였다.

패션업계의 노동착취를 목격한 D씨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패션업계에 일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다”며 “노동착취를 목격하고 분노를 느꼈고 문제개선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 지난 17일 '패션노조'와 '알바노조' 회원들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패션업계 노동착취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 중이다. 가운데 검은옷 입은 남자가 D씨다. 사진=이치열 기자.

D씨는 ‘패션노조’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 초기에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좁은 패션업계 특성 상 신상이 알려질 경우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인 탓이다. 그럼에도 D씨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를 기획하고 나서 다른 디자이너들의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며 “(노동착취 고발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7일 패션노조의 퍼포먼스를 계기로 디자이너와 대중들의 관심이 ‘패션노조’에 쏠렸다. D씨는 “최근에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을 17만명이나 읽었다”며 “처음에 주저하던 디자이너들도 적극적으로 내부 문제를 제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봇물이 터진 셈이다. 실제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패션노조’와 관련한 기사에 다음과 같은 제보성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

“월 80만원에 하녀 대하듯 부리고 밥도 (자비로) 사먹고 주말 할일 없어도 출근한다.”
“한번 되물었다고 얼굴에 원단을 던지고. 14시간 동안 밥 먹을 시간 안 주고.”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에 인턴으로 일하는 제 친구는 야근까지 하는데 월 30만원 받아요.”
“노동착취랑 돈만 문제인줄 아냐. 어리고 대학 갓 졸업하고 이쁘장한 애들은 성희롱까지 당한다.”

제보받은 내용 중 가장 심각한 사례를 묻자 D씨는 “모델을 따로 고용하기 아까우니 디자이너 면접 때 디자인과 무관한 신체 치수를 따지기도 한다”며 “몸매차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D씨는 또 “어떤 디자이너는 유명브랜드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해 상사에게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곳은 인턴을 1개월만 채용해 일을 연장할 방법이 없었다”며 “상사가 타인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는 편법을 요구해 가족과 지인의 이름으로 계약을 4개월 동안 근로를 이어갔으나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D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디자이너는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상태였다”며 “근로계약의 시작과 중간, 끝에 모두 불법에 가까운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D씨는 아직 ‘패션노조’를 정식 노조로 발족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는 “진짜 노조가 되는 것은 멀고 어려운 일”이라며 “당분간은 패션업계의 노동착취에 대한 여론을 끌어 모으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D씨는 차기 퍼포먼스에 대해 구상 중이다. D씨는 “업계 특성 상 조끼입고 머리띠 두르고 투쟁하는 것보다 패션을 접목한 퍼포먼스가 효과적”이라며 “배트맨 가면을 단체로 쓰고 올 블랙으로 입은 다음 패션계 악당과 대치하는 이미지를 연출할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D씨는 언론에 당부를 전했다. 그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큰 변화 이루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언론이 패션노조에 관심을 가져 주고, 그 덕분에 패션업계의 문제들이 조명되는 사실이 고맙다”며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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