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기자는 접근금지’

‘기레기’(기자+쓰레기)를 나타내는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던 정연주 전 KBS사장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이던 1973년 10월, 독재반대 시위 현장에서 봤던 문구다. 기자를 개에 비유하던 40여 년 전처럼,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는 쓰레기로 전락했다. 언론의 자유가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요즘이 새롭지 않은 이유다. 놀랍도록 닮은 역사의 데칼코마니다. 

지난 8일 펜을 놓으신 故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덕분에 다시 동아투위에 주목하게 됐다. 젊은 기자는 고인이 낯설지도 모른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현장의 후배들은 참 언론인의 삶을 새롭게 만났다. 고인을 통해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고인의 빈소에서 이틀간 취재를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에 이틀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동아투위를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독재정권과 맞서 언론자유를 외치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지 올해로 40주년이 됐다. 뉴스타파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을 맞아 22일 특집 다큐멘터리 <40년>을 내놨다. 여전히 언론 자유가 억압받는 현실을 동아투위 해직 언론인과 이명박 정부 이후의 해직언론인의 삶을 중심으로 언론 자유의 의미를 살폈다.       

   
▲ 뉴스타파 다큐멘터리 '40년' 화면 갈무리
 

故 성유보 전 위원장의 싸움이 시작된 것은 40여년 전 유신이 선포된 직후였다. <40년>에서 박종만(72) 동아일보 해직기자는 “말하지 않을 자유마저도 사실은 박탈됐다”며 “정부당국이 어떤 기사를 실어라 그러면 그것을 싣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할 말을 못하게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침묵할 권리마저 빼앗은 살벌한 폭압이었다.

범죄 용의자에게도 보장되는 것이 묵비권 아니었는가. 유신정권이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는 표현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권력이 필요한 말만 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에 저항했던 박종만 동아일보 해직기자는 “막말로 개패듯이 두드려 패가지고 트럭에다 가마떼기 얹어놓듯이 (시위하던)학생들을 실었다”며 “그런걸 보면서 진짜 눈물을 흘리면서 취재를 했다”고 증언했다.

언제 눈물로 취재했는지 떠올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사 100일을 맞아 1박 2일로 안산에서부터 국회까지 걸었던 날이었다. 참사 99일째인 7월 23일 밤, 경기도 광명 시민체육관에 모인 유가족과 기자들은 펑펑 울었다. 희생자 부모들의 발언과 아이들이 직접 찍은 휴대폰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외면하며 정부의 입장만을 억지로 전달하는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 故 성유보 동아일보 해직기자 (사진 = 이치열 기자)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읽는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의 이름이 실린 기사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힘들었던 그 때와 2014년 현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YTN 해직사태 6년을 맞는 지난 6일, 해직 언론인 6명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도 동아투위의 외침과 비슷했다. 해직 언론인 복직, 자유 언론 수호, 권력 감시와 비판.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사회도 사실은 권력이 허락한 자유만 누릴 수 있는 사회다. 반세기동안 언론의 자유가 언제 제대로 있었나. 4·19 혁명이 있었던 1960년. 시인 김수영은 미발표 시 ‘김일성만세’라는 작품을 썼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시인 김수영이 북한에 있었다면 아마 ‘박정희만세’라는 시를 썼을 것이다. 언론 자유는 적과 동지를 구분해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언론자유는 권력이 허락한 말만 해야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은 못하게 하는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다. 40년간 싸워온 동아투위 선배들의 뜻을 조금 헤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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