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하 ‘일과건강센터’가 지난달 1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비노동자 중 29.5%만이 휴게시설이 구비된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별도의 목욕시설을 갖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는 22.1%, 청소 및 분리수거 이후 사용할 수 있는 별도의 세탁시설이 구비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는 17.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환경미화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목욕·세탁시설을 제공하도록 돼 있고, 야간에 작업하는 노동자 중 수면을 취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수면장소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그러나 실태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대부분의 사업장이 이를 지키지 않아 현행법령을 위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서울시 노원지역 아파트 경비업무 노동자 1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보고서> 자료.
 

실제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79조는 “환경미화 업무, 음식물 쓰레기·분뇨 등 오물의 수거·처리 업무, 폐기물·재활용품의 선별·처리 업무, 그 밖에 미생물로 인하여 신체 또는 피복이 오염될 우려가 있는 업무 중 하나에 해당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접근하기 쉬운 장소에 세면·목욕시설, 탈의 및 세탁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81조는 “야간에 작업하는 근로자에게 수면을 취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적당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남녀 각각 구분하여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일을 하는 장아무개씨는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휴게실이나 수면시설이 없어 지하에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서 쉰다”고 말했다. 장씨는 텐트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천장이 낡아서 석면으로 추정되는 가루가 떨어져 텐트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목욕·세탁시설 구비 여부에 대해 장씨는 “그런 시설은 전혀 없다”며 “하수구작업을 하거나 고양이 사체를 치우는 일을 한 뒤에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옷이 더러워져도 세탁을 할 시설이 없다”며 “가끔 화장실에서 빨래하는데 이마저도 항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눈치 보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다행히 이 아파트는 온수가 나와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속 김수영 변호사는 “경비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로 지하공간에 주민들이 버린 매트리스를 갖다놓고 휴게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실상은 실태조사 결과보다 더욱 열악할 것”이라며 “한 사례로 근로감독관이 나오자 아파트 청소노동자 탈의실을 경비노동자 휴게실로 속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용불안정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3~12개월에 한 번씩 고용계약서를 작성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3일 정오께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경비노동자 분신사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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