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의 친일부역 행위 비호와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은 이인호 KBS이사장이 자신의 역사관을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지난달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하는 강연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해방 직후 이승만-박헌영 회동에서 박헌영이 내세운 ‘친일파 청산’이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고 주장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 발언과 함께 “공산주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을 약화시켜야 되는데, 친일파 청산이 내세우기 가장 좋은 명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해방 직후 대두된 친일파 청산 여론을 ‘공산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명분’이라고 왜곡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실은 이 이사장의 발언을 공개하며 “좌익은 물론 민족주의 우익진영에서도 최우선적인 민족적 과제로 내세웠던 ‘친일파 청산’ 요구를 ‘소련의 지령에 따른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책동’으로 폄훼하는 심각한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작년 9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 부쳐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기자회견’에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맨 오른쪽)가 기자회견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이 이사장이 KBS이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자신의 역사관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17일 이사회에서 자신의 역사관 논란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운동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역사인식이 내 인식과 다른 것은 사실”이라며 폄하했고, 사후평가의 방식으로 KBS 프로그램들에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KBS 안팎에선 이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언론·역사단체 관계자들은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학사 교과서나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전환 논란에서 드러났듯 박근혜 정권은 한국 근·현대사 인식체계를 친일과 독재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이인호 씨의 KBS 이사장 낙하산 인사는 역사 왜곡을 언론부문으로까지 확대하려는 징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인호 씨 논리대로라면 친일파 청산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모두 소련의 주구가 된다”며 “친일 독재를 미화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있는 이인호 씨는 KBS 이사장직에서 당장 물러나야 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해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파행으로 운영되던 KBS 이사회는 야당추천이사들의 복귀로 일단 정상화 됐다. 하지만 야당추천 이사들은 이사회에 참석해 이 이사장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던져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김주언 이사는 “(이 이사장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역사관, 가치관, 이념을 프로그램에 반영하거나 영향을 미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경고했다”며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의 특별한 말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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