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난 25일 정치권에 “수사·기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참사 후 5개월,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오랜 단식과 농성을 이어가며, 수사·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호소해왔던 유가족들이 한 발 물러선 셈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특별법에 수사·기소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을 입법청원했지만, 새누리당은 ‘법질서를 흔든다’는 말만 반복하며 이를 거부해왔다. 대통령은 유가족을 모른체 했고, 유가족들의 유일한 국회 창구였던 야당은 지리멸렬했으며, 유가족 일부가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그리고 세월호 유족들은 점점 고립됐다.

그 징후는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된 여론조사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세월호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을 때 여당과 일부 언론은 ‘법질서’만 운운했다. 하지만 여론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자 이들은 ‘국민의 뜻’을 운운하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사회동향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특별법으로 만들어지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52.1%, 반대한다는 의견은 13%에 그쳤다. 7월 28~31일 진행된 갤럽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수사·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은 58%,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35.5%였다.

   
▲ 동아일보 7월 11일자. 31면. 사설.
 

이 시기,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수사·기소권 부여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히려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시작되면서 청와대-해경의 핫라인 녹취록이 드러나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7시간 동안 대면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를 문책하기도 했다.

“나라를 뒤흔든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 박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대통령이 거리를 두는 것인지, 보좌진도 보고를 두려워할 만큼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권위적이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7월11일자 동아일보 사설 <청와대의 세월호 위기대처 능력 “창피하다”>

“보다 못한 유가족들이 나섰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350만명의 서명지를 전달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도 이날 학교 앞에서부터 국회의사당까지 도보 행진에 나섰다. 국회의원들은 이 학생들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7월16일자 중앙일보 천권필 기자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간 한심한 국회>)

중앙일보 천권필 기자의 기자수첩처럼 당시 보수언론은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 수사·기소권은 어렵지만 최대한 유가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7월 18일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칼럼을 썼고, 같은 달 19일 동아일보는 일간베스트의 세월호 모독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이들 언론에 변화가 생긴 것은 7월 22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되고, 그의 장남 유대균씨가 같은 달 25일 검거되면서부터다. 이후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이른바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며 점차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비판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여야의) 이 정도 입장차이라면 여야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관련 쟁점을 타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야당이 세월호 특별법을 다른 법안들과 연계하겠다고 나선 것은 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 전술의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중략)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의 심의·처리를 막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7월26일자 조선일보 사설 <여야, 세월호 특별법 대화로 못 풀 이유가 없다>)

   
▲ 조선일보 7월 31일자. 3면.
 

하지만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하자 그동안 나타났던 ‘조심스러움’은 사라진다. 재보궐선거 다음날인 7월 31일 조선일보는 <여 아닌 야 심판한 재·보선, 야 행태에 대한 염증이다>라는 사설을 실었고, 중앙일보는 <7·30 민심, 세월호를 넘어 민생을 선택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7·30 국민의 명령, ‘세월호 정쟁’ 그치고 경제 살려라>였다. 

이후 ‘세월호를 끝내라’는 이들 언론의 주문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다른 법안 처리가 늦어진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하는 정도에 그쳤다. 보수언론의 유족들에 대한 공세가 본격화 된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1차 합의가 나오고, 유족들이 이를 거부한 8월 7일 이후부터다.

양 당의 1차 합의 직후 반발이 심해지자 조선일보는 8월 9일 <야 세월호 특별법 합의 뒤집으면 국민이 등 돌릴 것>이라는 사설을 통해 야당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세월호 타협 뒤집는 강경파에 끌려가면 야당 또 망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직후인 8월20일 여야가 2차 합의를 하고, 이를 유족들이 거부하자 유족들에 대한 공세는 강화된다.

중앙일보는 8월 21일 1면 머리기사로 <의회정치 무력화됐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정치>란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모두 유족들의 반대를 에둘러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날 리얼미터는 세월호 특별법을 ‘여야 재협상 안대로 처리하자는 의견’이 45.8%, ‘유가족 뜻대로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38.2%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중앙일보 8월 21일자. 1면.
 

이후 여론은 다시 역전된다. 8월 26부터 28일까지 진행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유가족 뜻에 따라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47%, ‘여야 재협상안’으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40%로 나타났다. 8월31일 발표된 KBS 여론조사에서도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53.7%, ‘재합의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41.6%로 나왔다. 다소 역전됐지만 갤럽 여론조사에선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기소권 부여는 ‘줘야 한다’가 41%, ‘주지 말아야 한다’가 43%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해진 상황에서 8월 말, 보수 언론은 단식의 상징이 된 유민아빠에 대한 ‘신상털기’를 시작했다. 수사권·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을 청원한 대한변협에는 과거 회장단이 찾아가 압박을 가했고(9월 1일), 이들 언론은 사설을 통해 변협에 공세를 가했다.(동아일보 9월2일 사설 <민변이 접수한 변협, ‘반법치 세월호법안’ 만든 책임 크다>, 조선일보 9월2일 사설 <대한변협, 편향된 입장 고수하려면 ‘시민단체’로 가야>)

그리고 ‘외부세력 개입’ 카드도 나왔다. 지난달 23일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는 기자칼럼 <국보법 위반자의 ‘세월호’>에서 “세월호 참사국민대책회의 내부에는 실천연대의 후신인 민권연대 간부를 포함, 반정부 성향 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전국농민총연맹 (중략) 출신들이 집행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8월30일 <세월호 유족 상처 헤집는 유언비어·비방 엄단해야>라는 사설에서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은근슬쩍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한미FTA 반대, (중략) 이들은 어떻게든 세월호 문제를 정부·여당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끌고 가기 위해 각종 선동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요구했던 이들을 ‘반정부 투쟁’이나 하는 사람들도 폄훼한 것이다.

   
▲ 동아일보 9월 19일자. 39면. 사설.
 

이들 언론의 집요한 공세에 결국 여론은 역전됐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넣어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하자’는 주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달라졌다.

9월11~12일 진행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여야 합의안’으로 처리하자는 의견이 50.3%, ‘유가족 입장을 반영해 처리하자’는 의견이 35.9%였다. 9월16~18일 진행된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여야협상안 대로 처리하자’는 의견이 46%, ‘유족 뜻에 따라 재협상’하자는 의견이 41%였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은 37%,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45%였다.

그리고 최근 유족 일부와 대리기사 간 폭행사건이 벌어졌고 보수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19일 동아일보는 사설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치외법권의 권력기관인가>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집행부가 대리운전기사를 심야에 집단 폭행한 사건은 세월호 사태 이후 다소간의 무리와 억지도 감수해온 국민의 인내 한계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날 사설 <세월호 유족들, 국민 눈에 비친 자신 모습 돌아볼 때>에서 “세월호 참사 후 일부 유족은 대통령은 물론 장관·국회의원에게도 행패에 가까운 언동을 감추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유족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던 조중동의 태도는 이렇게 변했다. 세월호 유족들에 공감하는 국민 여론을 바꾸기 위한 조중동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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