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좀 늦게 나왔다. ‘경제’가 전부가 아님을 느낀 시민들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 경제성장에 모든 힘을 쏟아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은 사실 오래전에 깨달았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1994년 9월 10일 창립한 참여연대가 올해 20주년을 맞이해 발간한 책의 제목은 <반성된 미래>이다. 이 책은 최근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몇몇 현상들의 흐름과 연결해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저녁이 있는 삶.”
2012년 대선으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경제효율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물음표’를 던졌다. 곧 깨닫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쉼표’였다는 것을. OECD 평균 근로시간의 1.3배나 일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간절히 필요했다.

해가 바뀌었다. 보수 정권의 재등장은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온 한마디, “안녕들 하십니까!” 2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예비 직장인들도 아팠다. 청춘은 아름답지 않았다. 가난하면서 아름다운 삶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외침이 있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시 해가 바뀌어 2014년 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참사가 벌어진다. 4월 16일, 이젠 10대에게 칼날이 향했다. 난파선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폭력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누구도 좋은 삶을 말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어른도 청년도 학생도. 우리 사회가 깨달아 온 길이다.

   
▲ 반성된 미래 / 김균 / 후마니타스 펴냄
 

낮은 곳으로 한 걸음 내딛는 교황에 열광하고, 먼저 앞장서는 이순신에 열광했다. 금방 끓어올랐다 식는 냄비처럼 교황도 명량도 찬바람이 불면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본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돈 놓고 돈 먹기만 살아남는 신자유주의. 피케티의 조언에도 귀 기울여본다. 열심히 노동해도 빈부격차가 커지는 구렁텅이다. 빠져 나와야 한다. 이제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나야 한다.

<반성된 미래>는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는다. 참여연대와 함께한 20년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를 응시한다. ‘사법정의’에서 ‘정의’는 사라지고 ‘사법’만 남은 폭력성,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의 ‘자유’만 남은 황량함, ‘시민단체’에 ‘시민’은 사라지고 ‘단체’만 남았다는 좌절감을 딛고, ‘경제성장’을 뛰어넘어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세상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돈에서 단순한 교환가치 이상의 것을 본다. 십자가를 보고 나무토막 이상의 것을 보는 것이 신앙이라면, 이 사회는 돈이라는 신을 향한 신앙심이 신실하다. 다양한 가치들을 보지 못하게 했다. 자치, 생태, 통일, 다양성, 성 평등, 사회적 경제 등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들을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가 정교하게 분석했다. 종교가 된 ‘경제’를 뛰어넘는 한 걸음을 함께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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