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제작 스태프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다. 제작 스태프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정당한 대우를 보장받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방송스태프노조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유광욱)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조 설립 총회를 연다. 유광욱 위원장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많은 스태프들이 노조 설립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나서진 못하고 있다”며 “방송 일을 시작할 때부터 후배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남기고 싶었다. 그게 노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조 가입 대상은 방송사(본사·자회사) 및 외주 프로덕션 소속을 제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촬영·조명, 동시녹음, 분장 업무 등 제작 현장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일용직 기술 인력뿐 아니라 방송사 조연출(FD), 연기자 로드매니저와 코디네이터까지도 가입할 수 있다.

방송 제작 스태프들의 근로조건은 사회 문제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1년 보고서를 보면, 스태프들 계약 유형 가운데 서면 근로계약은 절반에도 못 미친 43.9%였다. 구두계약은 24.1%, 아무런 계약을 하지 않은 경우도 32%에 달했다. 인권위가 지난 2011년 실시한 예술, 문화, 스포츠 분야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열악한 노동조건이 드러났다. 제작 스태프 응답자 가운데 55.6%가 월 150만원 미만 임금을 받고 있었다.

   
▲ 서울 MBC 여의도 사옥 앞에 걸린 방송스태프노조설립 공고.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스태프 표준계약서’를 마련했으나 실효성은 떨어졌다. 유 위원장은 “표준계약서는 방송사가 따라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여전히 무박4일, 5일 철야 촬영이 계속되고 있고, 스태프들은 길바닥에서 6시간도 안 되는 한뎃잠을 잔다”고 했다. 

월 100만원도 못 받는 스태프들이 부지기수라는 현실은 그가 노조 설립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다. 유 위원장은 “하루에 6시간은 재워줘야 한다”며 “지금처럼 무박 철야 촬영은 안 된다.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유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유광욱 방송스태프노조설립추진위원장.
 

- 노조 설립을 결심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87년 방송드라마동시녹음을 통해 방송 일을 시작했다. MBC ‘6.25특집 드라마’ <천둥소리>였다. 그때 다짐했던 게 있다. 이 분야 최고가 되자, 하루빨리 성장해서 후배들을 가르치자,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자 등이었다. 다른 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지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은 이루지 못했다. 노조 설립을 생각하게 된 계기다. 

- 이전에도 노조를 만들고자 했나
김대중 정부 때 처음 시작을 했다. 성공하지 못했다. 8년 동안 MBC에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올 봄부터 다시 설립을 기획했다. 노조에 대한 요구는 있지만 방송 스태프들이 직접 나서긴 어렵다. 이미 운송하시는 분들은 적극 나섰지 않나. 기술, 조명, 촬영, 녹음 쪽은 아무래도 직접 나서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다. 

- 그동안 노조 설립이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사는 거대 갑이다. 스태프가 노조를 만드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스태프 표준계약서’가 있다. 법정 최저임금 지급 및 4대 보험 보장 등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방송사가 따라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 어느 정도로 근로조건이 열악한가
일례로, 주 2회 방송되는 드라마 같은 경우 무박 4일, 5일 철야를 하는 경우가 다수다. 당연히 식사도 제때 할 수 없다. 과로나 심장마비로 죽는 일도 발생한다. ‘지금 고생하더라도 나중에는 위로 올라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 때문에 참는 거다. 한 달 임금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막내 기수’ 후배들은 그것도 받지 못한다. 현장에 정규직은 몇 명 없다. 열에 여덟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비정규직이다. 

- 노조가 가장 먼저 다뤄야 할 현안은 무엇인가. 
조합원 인권과 권리다. 법정 최저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처럼 무박 철야로 일하는 건 안 된다. 정직원도 철야로 일하지만 비정규직 스태프 처우와 비교할 순 없다. 덧붙이자면, 한국 방송 제작 시스템과 구조가 근본 문제다. 스타 연예인 몸값이 일반 드라마 제작비를 넘어서는 제작 시스템 속에서 스태프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