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증·개축으로 인한 복원력 약화와 화물 과적 상황에서 급속한 변침.’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잠정 결론 내린 세월호 침몰 원인이다. 과연 그럴까. 그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 중 일부가 단순 조타 과실로 인한 급변침으로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다는 의문을 제기하긴 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들어 검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의 노력이 없었다면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 제기는 자칫 ‘유언비어’ 수준에서 그칠 수 있었다.

물론 수사·기소권이 없는 민변 세월호 특위가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히 밝혀낼 수 있는 능력이나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장을 비롯해 3등 항해사와 조타수 등 선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며 보다 과학적인 재연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진실’에 근접하는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한다.

민변 세월호 특위 변호사들(권영국·박인동·손명호·조영관)이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을 쓴 이유 중 하나도 검경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세월호의 정확한 침몰 원인은커녕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한 책임자 처벌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북콘서트 행사 모습. 왼쪽부터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상임이사, 권영국 변호사, 방은진 영화감독. 사진=김도연 기자
 

선박 복원력이 떨어졌을 때 심한 파도나 변침으로 기울더라도 침수가 진행되지 않는 한 선체가 기울어진 상태로 계속 표류한다는 게 선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세월호는 선체의 경사가 계속돼 침몰했다. 이는 선체의 하부에 파공이 발생해 침수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검찰은 선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당연히 가졌어야 할 이런 궁금증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의 공동 필진 중 한 명인 권영국 변호사는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도 “국정조사나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보면 결국 가장 힘없고 낮은 곳에 있는 말단 공무원을 구속하고 선박의 선장과 선원만 처벌하면 다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고 원인을 만든 근본 제도와 유착·부패 구조를 제대로 밝혀 엄벌하지 않으면 안전한 사회를 결코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 완전하지 않다. 저자들의 말처럼 이 책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없도록 하는 데 하나의 방향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고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 엄정하게 처벌할 특별법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에 앞선 유가족과 면담에서는 “유가족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생각의길 펴냄
 

그랬던 대통령이 이제는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46일간 목숨을 건 단식을 해도 찾아와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피폐한 몸을 이끌고 청와대까지 직접 가서 면담을 호소해도 만나주지 않았다.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은 대통령이 나설 사안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대통령은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한다.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헌법이 국가에 부여하는 명령이고, 대통령은 이를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정부의 수장으로서 모든 중앙행정기관을 지휘·감독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이런 책임을 지지 않았을 때 국민은 대통령의 자격을 물을 수 있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모독’을 말하기 전에 유가족이 받은 ‘모멸’부터 헤아려야 한다.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한 안산 단원고 생존 학생은 “선원들에 대한 처벌보다 더 원하는 것은 왜 친구들이 그렇게 돼야 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대통령이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이다. 이제 대통령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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