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한 법원 판결에 대해 ‘음모’와 ‘선동’은 개념만 다를 뿐 범죄의 성립요건은 같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내란선동과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무죄 판결과 관련한 시민사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 실행의 착수에 이르기 전 단계까지 행해지는 예비·음모건 선동이건 간에 그런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음모나 선동 행위가 실제 범죄의 실행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질적 위험성이 존재하는 경우여야 한다”며 “이 사건은 내란과 국헌문란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급박한 위험이 없어, 내란음모만이 아니라 내란선동도 당연히 무죄로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내란선동죄를 항소심 판결처럼 폭넓게 인정하면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 교수는 “아무리 체제전복적 내용의 표현이라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그 표현의 내용이나 성격이 아니라 그 표현 행위가 야기하는 ‘위험의 급박성과 현존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내란선동죄로 처벌되는 경우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이라는 ‘급박한 불법적 행위에 대한 선동’에 엄격히 제한되지 않고 ‘개연성’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18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내란선동과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무죄 판결과 관련한 시민사회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 교수는 또 내란선동죄와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한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단이 피고인들의 정치사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져 왔음을 지적했다. 그는 “내란음모 사건에서 이석기 의원이 어디 가서 무슨 기간시설을 파괴하자고 얘기한 적이 없고, 구체적인 수단과 행동을 얘기한 적도 없다”면서 “재판부가 체제 전복과 내란선동이라고 판단한 것은 결국 행위자가 어떤 정치이념을 지향하고 있는가의 판단으로 국헌문란의 목적 유무를 대체해 버렸다”고 말했다.
 
민청학련 사건의 재심 변론을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는 “이석기 의원의 정세강연회 발언의 핵심인 ‘미 제국주의와의 전쟁’ 내용이 우리나라 헌법과 형법, 국가보안법상 어디에 해당하는지 적극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보다 구체적으로 발언의 주된 내용인 분단이나 남북의 국내·외적 문제가 주로 미국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북한과 유사할지라도, 이것이 우리 법체계와 대립하는지는 정면으로 다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음모와 선동의 차이는, 음모는 다수가 합의하는 것이고 선동은 단독으로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어서, 위험성이 더 높아 보이는 다수의 합의인 음모와 같은 수준으로 처벌하려면 선동의 경우가 오히려 더 실질적 위험성 요건을 필요로 한다고 봐야 한다”며 “법원이 이 의원 등 여러 사람의 의사교환을 통해 이뤄진 합의는 실질적 위험성이 없어서 무죄라고 판단하면서, 합의의 일부인 이 의원 등의 발언을 따로 떼어내어 별도의 ‘선동’으로 기소하고 판단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검찰은 이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등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상고 이유서에서 ‘범죄 실행 전 단계인 내란음모 혐의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일시가 특정되지 않아도 성립되며 RO(혁명 조직)의 실체 또한 명백히 인정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내란음모·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의원에 대해 1심 재판부(수원지법 형사12부·김정운 부장판사)는 모두 유죄를 인정해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9부·이민걸 부장판사)는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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