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인호 이사장이 KBS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이 이사장은 17일 이사회 모두발언을 통해 “KBS 이사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논평이나 비판을 해선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직접 관여하면 안 되지만 결과물에 대해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은 토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작과정에 ‘개입’은 하지 않겠지만 방송된 프로그램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의미다. 이 이사장은 “개입이 아니라 논평과 비평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KBS의 최고의결기구 수장이 KBS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KBS 방송·뉴스 제작에 이사장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규환 KBS 야권추천이사는 “일반 시청자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사장이 개별 프로그램에 대해 사후에 평가를 한다면 이는 제작일선의 기자, PD들에게 다음 제작물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다”며 “이사장의 의견이 사장이나 간부들에게 전달이 된다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본인으로서는 소신발언이라고 한 것 같은데, 지금 매우 착각을 하신 것 아닌가”라며 “KBS에는 내부에서 제작자율성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의 학자적인 관행과 이사장으로 지켜야 할 도리, 그 사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작년 9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 부쳐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기자회견’에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자회견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인호 이사장이 친일 역사관으로 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KBS 프로그램이 이인호 이사장의 역사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자신의 역사관에 대해 “당시 운동권 교육을 받았던 일부 정치인들이나 국사학교수, 교사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일부 언론인들의 역사인식이 제 인식과 다른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 자신의 역사관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야권추천이사들이 이 이사장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질의서를 보냈을 때도 이인호 이사장은 답변 이메일을 통해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에서 동료들 간에 서면으로 된 집단 질의를 통해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검증하려 한다는 것은 형식상으로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일이며 절대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야권추천이사들은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4인 이사가 공개질의서를 보낸 것은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 이사장이 KBS 이사장으로 ‘호선’되는 과정에서 과거 말씀이나 글이 공개됨으로써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KBS 최고의결기구의 수장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이사장에게 다시 질의서를 보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KBS본부) 관계자는 “이 이사장의 발언은 개인 이인호의 가치관, 역사관, 언론관이 종합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발언”이라며 “KBS 이사회는 경영관련 최고 의결기구이고 방송법에 명시된 데 따라 경영분야의 결정을 하는 의결기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본인은 사후 평가가 개입이 아니라고 하지만 회사의 경영 최고의결기관이 어떤 프로그램을 논평·비평한 후 제작일선에 전달하면, 제작일선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의견이라고만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 이사장의 발언은 방송법을 현저히 위반하는 사안이고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발언을 즉각 취소하고, 방송 독립에 방패막이 되겠다는 다짐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7일 이사회에 야권추천이사들은 참여하지 않아 KBS 이사회는 반쪽으로 운영됐다. KBS 야권추천이사들은 이인호 이사장의 역사관과 방송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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