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순간은 행복이 과거형이 됐을 때일지 모른다. 8일 오전 9시 20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3반 고 김빛나라양의 동생 김하슬린양은 희생자 언니, 오빠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좋았고, 행복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더는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없는 슬픔에 김하슬린양은 편지 낭독 중간에 “시간이 지나면 보고 싶은 마음이 떠날 줄 알았는데, 더 보고싶다”고 읽던 중 말을 잇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146일째이자 추석인 8일 오전 9시,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대책위)는 경기도 안산합동분향소(분향소)에서 ‘가족합동기림상’을 차렸다. ‘기림상’이란 추석날 아침 일반적으로 준비하는 차례상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담는다. 희생자 학생들이 좋아하던 먹거리를 유가족마다 하나씩 준비해 올려놓고 아이들과의 추억을 기리자는 뜻을 담은 상으로 차례나 제사와는 다르다. 아직 찾지 못한 10명의 실종자 가족들을 고려해 합동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300여명의 유가족과 시민들은 9시가 되기 전에 분향소로 모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안산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평소에 반티(반별로 맞춰 유가족들이 함께 입는 티셔츠)를 입었던 유가족들은 검은 옷으로 영정 사진 앞에 섰다.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찾은 시민들과 구분되지 않았다. 애초에 유가족들도 평범한 시민이었다. 유경근 대책위 대변인의 진행으로 합동기림상 차림이 진행됐다.

오전 9시 12분, 먼저 7반 이수빈양의 어머니 박순미씨가 실종자와 그들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깊은 바다를 박차고 저희에게 돌아와주세요.” 박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도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배려했다. 뒤이어 김빛나라양 동생 김하슬린양의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더운 여름 국회와 광화문 농성장에서 힘든 싸움 중에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6반 이장환 군 아버지 이세주씨는 김양의 편지 낭독에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장환군이 좋아하던 간식을 챙겨왔다.

   
▲ 희생자 학생들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추석 차례상을 대신했다
 

울음바다가 된 분향소, 오전 9시 26분부터 약 15분 간의 영상이 상영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146일 간의 일정을 스케치하는 영상이었다. 분향소 왼편 모니터에서 영상이 먼저 상영되자 유가족들은 차례로 앉으며 뒷사람을 배려했다. 한 유가족은 영상을 보며 통곡하다 119 구급대원에게 실려 가기도 했다.

헌화를 마친 유가족들이 희생자가 있는 추모공원으로 이동하고 한산해진 분향소에서 유민이 사진을 열심히 찾는 안산시민이 있었다. 그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6일 동안 단식을 했던 김영오씨의 딸 고 김유민 양에게 편지를 썼지만 쑥쓰러운 마음에 아직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못했던 김정현(48, 여)씨였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시기에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조카를 보며 세월호 참사가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추석 당일 아침에 분향소를 찾았다고 한다.

김씨는 “저도 아이가 있었으면 아이랑 같이 농성장을 찾아 유민아빠에게 편지를 전달할 용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주 농성장을 찾는 모임이나 지인이 없어서 혼자 농성장을 찾기 어색해하던 김씨는 “부모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모, 삼촌들이 너희들(세월호 희생자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 경기도 안산하늘공원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에도 기림상이 차려졌다.
 

유가족은 가족이 있는 추모공원으로 이동했다. 분향소와 마찬가지로 희생자 학생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가족들이 준비했다. 대책위에서 많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피자 등을 준비했고, 안산시에서는 콜라를 준비했다. 안산 하늘공원에 도착한 10반 고 이경주 어머니 유병화씨는 “콜라 갖다놓기만 하고 따놓지 않았다”며 “저러면 아이들이 어떻게 먹어...”라며 경주양의 사진을 바라봤다.

   
▲ 6반 권순범 군의 어머니 최지영씨는 아들이 좋아하던 사과와 배를 준비했다.
 

 

고 서재능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던 불고기, 고 박세도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명절에 항상 찾던 약과를 준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첫 추석 아침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실종자와 희생자를 기리며 슬픔 속에서 흘러갔다. 분향소와 추모공원 행사 이후 가족들은 오후 4시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국민 한가위상 차리기’와 송편, 음식 나누기, 가수 이은미 공연 등 각종행사에 참여한다.

   
추석 당일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합동분향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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