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계약서를 쓰고, 상주하면서 직원들이랑 똑같이 일했다. 계약서에는 계약기간도 없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등 상시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직군들도 프리랜서나 계약직으로 뽑는다. 점점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지난 4일 만난 프리랜서 노동자 허모씨(34)는 방송사 프리랜서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털어놨다. 허모씨는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예능 프로그램 CG를 제작했던 10년차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그는 JTBC로부터 두 차례 해고를 당한 이후 회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진행 중이다.

허씨는 지난해 9월 23일 JT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4월 30일 해고당했다. 

JTBC가 주장하는 해고 사유는 작업랑 축소다. 허씨가 속해있던 제작지원팀의 이모팀장은 3월 31일 "JTBC 제작 CG파트의 사정으로 프리랜서의 업무를 2014년 4월 30일까지 종료하게 됐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허씨는 '작업량 축소'는 JTBC가 나중에 내세운 근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허씨와 같은 팀에서 일하다 일을 그만두게 된 프리랜서 노동자가 노동청에 퇴직금을 신청했고, 노동청에서 퇴직금을 지불하라는 시정 명령이 내려오자 사측이 나머지 프리랜서들에게 해고통보를 했다는 것.

허씨는 "같이 일하던 프리랜서가 그만두게 된 시점이 일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라 회사에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 프리랜서가 노동청에 신고를 했고, 노동청에서 시정명령을 내렸다"며 "그러자 회사가 '불씨의 소지가 될 수 있으니 (프리랜서들을) 다 정리 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한순간에 '불씨의 소지'로 몰려 황당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후 프리랜서 3명이 해고 통보를 받고 일을 그만뒀고, 허씨는 이의를 제기했다. 허씨는 지난 5월 28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허씨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JTBC는 지노위에 사건이 접수되고 난 이후인 6월 30일 허씨에겐 복직 명령을 내렸다. 허씨의 이의 제기를 JTBC가 받아들이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허씨는 원직 복직되지 않은 채 인사팀에 '대기발령' 됐고, JTBC는 허씨에게 올해 12월까지 JTBC의 자회사인 JMnet에 6개월 계약직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허씨는 6개월 계약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 JTBC CI
 

허씨는 "복직 명령을 내려서 원직 복직인 줄 알고 회사에 갔는데 아니었다"며 "'너는 근로자가 아니지만 프리랜서인 당신에게 혜택을 주겠다'식의 태도였다"고 말했다. 허씨는 "6개월 기간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12월 이후에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지 않나"고 말했다. 허씨는 원래 직무가 없다면 OAP(브랜드디자인) 업무 등에 종사하겠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을 때 계약기간이 명시되지 않았기에 계약기간이 명시된 계약직으로 일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반면 JTBC는 허씨의 요구가 사실상 정규직 전환 요구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양 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허씨는 인사팀에 대기발령 상태로 남았고 지노위는 7월 22일 허씨를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허씨의 구제신청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복직이 이루어져 구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노위가 각하 결정을 한지 6일 만인 7월 28일 JTBC 측은 허씨에게 8월 28일자로 해고될 것이라며 2차 해고를 통보했다. 8월 28일 이후 출근할 경우 경비업체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허씨는 통보대로 해고됐다.

허씨 측은 JTBC의 복직 명령에 처음부터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허씨 대리인을 맡고 있던 노무법인 로맥의 문영섭 노무사는 "구제이유를 없애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며 "근로자성과 부당해고가 모두 인정되는 판정만은 막자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허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방송사 프리랜서들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계약기간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채 계약을 맺는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계약해지'라는 간단한 절차를 통해 해고될 수 있는 처지이다.

하지만 허씨는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고, 팀장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 일하는 사실상의 '근로자'이다. 허씨는 대체휴일까지 사용했고, 사측은 출근명령에 위반할 경우 취업규칙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지노위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사용종속 관계 하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허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문영섭 노무사는 "출퇴근 시간과 근무 장소가 정해져 있는 등 정규직과 채용 목적이 동일함에도 프리랜서로 뽑은 것부터가 문제"라며 "옆에 앉은 근무자와 동일하게 팀장의 명령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 근무자는 정규직이다. 또한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도 따로 있다"고 말했다. 문 노무사는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은 채 자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프리랜서지, 허씨의 경우 프리랜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문 노무사는 또한 "지노위 판정에 따라 허씨의 근로자성이 인정됐다. 따라서 허씨에 대한 해고 사유와 절차는 정당해야 한다"며 "사유가 부당할 뿐 아니라 이메일로만 통보하는 등 절차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허씨 측은 두 번째 해고에 대해 9월 1일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한 상태다.

한편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프로그램이 7개에서 5개로 줄었다. 프리랜서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프리랜서 계약을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모든 방송이 대부분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일이 없어졌기에 계약해지한 것으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불씨의 소지가 될 수 있어 프리랜서들을 정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복직 명령을 내린 것은 허씨 주장을 받아준 것"이라며 "허씨는 JTBC 정규직을 원했다. 하지만 애초에 프리랜서로 계약을 하지 않았나. (정규직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9월 1일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단정적으로 한쪽 입장을 대변해 JTBC를 악덕기업으로 만들어 놨다. 정정보도 청구 및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일부 수정 9월 8일 오후 8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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