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는 짧다. 특히 기자들에겐 연휴는 무의미하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들도 연휴나 평일이나 불안한 건 매한가지. 한시라도 ‘뉴스’에 눈 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언론을 다룬 선 굵은 영화와 드라마 5편이다. 공채를 기다리는 언론 지망생과 편집국의 고루함에 지친 기자들에게 추천하는 수작이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 1976)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위치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에 정체 모를 괴한들이 침입한다. 체포된 이들은 단순 절도라고 주장했지만 설치하려 한 건 바로 ‘도청’ 장치. 수사 과정에서 백악관과 연결고리가 드러났고, 이를 은폐하려던 닉슨 대통령은 정치적 압박을 못 이기고 1974년 하야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사건, 영화는 1972년 ‘워터게이트’를 다룬다.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 1976)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로버트 레드퍼드 분)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더스틴 호프먼 분)의 활약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도 우드워드 정보원 ‘딥 스로트(Deep Throat)’가 등장하는데 실제 워싱턴 포스트는 30년 동안 그를 보호했다. 한국 언론 풍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 아닐까. 영화를 보면 국정원과 군의 지난 대선 개입이 문득 떠오른다. 어쩌면 워터게이트보다 더 심각한 범죄 행위. 그런데 우리는 왜?

굿나잇 앤 굿럭 (Good Night, and Good Luck, 2005)

미국 방송사 CBS에서 명성을 날렸던 실존인물 에드워드 R. 머로를 중심으로, 이 뉴스룸 구성원들이 어떻게 조셉 매카시 의원에 맞서는지 보여준다. 조셉 매카시는 공산주의자는 물론, 이와 관련이 없는 이들까지 반(反) 사회적 스파이들로 규정하며 1950년 초반 빨갱이 낙인찍기 열풍을 선동한 인물. ‘매카시즘’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머로는 매카시와 맞서기 전부터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영국 본토 항공전을 라디오 생중계를 하며 저널리즘을 날 것으로 몸소 보여준 것. 1950년대 머로는 CBS 뉴스 ‘See It Now’를 통해 맥카시의 발언을 논평 형식으로 조목조목 반박한다. 자칫 잘못하면 ‘빨갱이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영화 속 머로는 양심에 근거한 저널리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런 활약에도 머로의 ‘See It Now’는 쇼 프로그램 시청률에 밀려 심야로 옮겨진 뒤 1958년 폐지됐다.

   
▲ 굿나잇 앤 굿럭 (Good Night, and Good Luck, 2005)
 

머로 역은 데이빗 스트래선(David Strathairn)이 맡았다. 이 영화 감독인 조지 클루니는 머로의 동료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를 맡으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아이언맨이 되기 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볼 수 있다. 영화에도 담긴 머로의 시카고 연차총회 연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는데, 다음은 그의 연설 말미 한 부분.

“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깨달음도 주고, 영감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TV를 사용하겠다고 결정할 때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다만 번쩍이는 전깃줄 박스(바보상자)에 불과합니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 2003)

이 작품은 드라마다. 하지만 6부작이다. 하루만에 다 볼 수 있는 분량이다. BBC에서 제작했다. 2000년대 최고 스릴러 드라마 하나로 뽑히는 작품이다. 연출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예이츠, 극복은 폴 애벗이 썼다. 신문사 헤럴드 기자 칼 매커프리가 주인공이며, 영국 노동당 하원 의원 스티븐 콜린스의 보좌관 소냐 베이커의 사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 2003)
 

칼 매커프리는 그의 사망 배후에 의회와 거대 독점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목숨 건 취재를 이어간다. 드라마가 성공하자 2008년 러셀 크로우 주연의 동명 영화가 개봉했으나 크게 호응을 얻진 못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편집장 캐머런 포스터(빌 나이 분)가 눈에 띄었다. 각종 외압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번뜩인다. 빌 나이 특유의 입담도 매력을 더한다. 유명 배우가 된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의 앳된 모습도 싱그럽다.

모비딕(2011)

모비딕은 한국 영화다. 1990년 한국을 뒤흔든 ‘윤이병 양심선언’, 즉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이 모티프다. ‘정부 위의 정부’라는 음모론을 소재로 다뤘다. 이 영화의 제목 ‘모비딕’은 보안사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실제 서울대 앞에 만들었던 아지트 ‘모비딕’ 카페에서 차용했다.

의문의 ‘발암교 폭발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취재한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 분)는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고향 후배 탈영병 윤혁(진구 분)을 만나면서 사건의 진실과 맞닥뜨린다. 이방우는 동료 기자 손진기(김상호), 성효관(김민희)과 특별 취재팀을 꾸려 배후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 영화 모비딕 (2011)
 

극 중 신문사 ‘명인일보’는 ‘동아일보 편집국’을 스케치한 결과물이다. 한국 기자와, 앞서 설명한 영화의 외국 기자 취재 방식을 비교해도 재밌다. 배우 황정민의 기자 교육을 맡았던 길진균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팀장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황정민이) 기자로 ‘구를’ 준비를 하고 잠바 차림에 가방을 메고 서울 방배동 집에서 버스로 취재 현장에 왔다”며 “취재원을 만나면 무얼 물어보는지, 취재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아주 꼼꼼하게 ‘취재’하던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제보자(2014)

마지막 영화는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모티프로 한 ‘제보자’다. 황우석 신화에 의문을 제기했던 이들의 외로운 사투를 그린다. 극의 주인공 박해일은 한학수 MBC PD, 유연석은 제보자 ‘닥터 K’ 역을 맡았다. 한 PD가 소속된 은 2005년 11월 22일 난자 매매 의혹을, 12월 15일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 제보자 (2014)
 

‘신화’를 건드린 대가는 혹독했다. 은 광고 없이 방송했을 정도로 코너로 몰렸다. 프로그램도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았다. 한 PD에게 진실을 알린 제보자도 조선일보에 의해 신상이 공개됐다. 당시 10년차 중견PD였던 한학수 PD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황우석 취재’는 내 17년 경력 중 가장 커다란 취재였고, 가장 커다란 시련을 안겨줬다”고 회고했다. 신화는 없었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진실을 위한 사투는  승리로 막을 내렸다. 감독은 임순례. 10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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