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사실은 나가 놀기 좋은 계절이다. 이번 한가위는 날씨만 놀기 좋은 것이 아니라, 첫 대체휴일 시행으로 긴 연휴 명절이기도 하다. 연휴 첫날인 6일, 인천국제공항에서는 8만 7천 명이 출국해 개항 이래 최다 인파를 기록했다. 고속도로 상황을 전하는 뉴스는 긴 연휴로 고향을 찾는 차량이 분산되어 주요 고속도로 소통이 대체로 원활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반면, 해외 여행지로 고향으로 떠나며 설레는 마음들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이 있다.

연휴 둘째 날인 8일 오전 10시, 숭실대학교 도서관 로비에서 만난 김민하(25, 여)씨가 그렇다. 김씨는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있었다. 시간 있을 때 미리 과외 수업 준비를 한다. 준비를 마치면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다.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언론 보도에는 관심이 없다. 김씨는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건(연휴 관련 언론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숭실대학교 도서관은 평소처럼 운영된다.
 

지난해 2월, 대전에서 공대를 졸업한 김씨는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6개월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취업준비도 하고 선교회 활동도 하기 위해서다. 취업 준비한 지 1년 6개월이 넘어가면서 김씨는 용돈을 벌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김씨는 오늘 저녁에 고향인 충청남도 서천에 잠시 내려간다. 할 일은 많지만, 연휴에도 일하시는 부모님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취업준비생(취준생)들에게 이번 연휴는 부족했던 공부를 보충하는 시간이다. 흔들리지 않고 평소처럼 일어나 도서관으로 출근(?)할 뿐이다. 김씨 뿐 아니라 숭실대 화학공학과 4학년인 고아무개(25, 여)씨도 8일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도서관에 왔다. 고씨는 연휴 내내 학교 도서관에 와서 공부할 계획이다. 지금 하고 있는 토익 공부를 빨리 끝내고 오픽(OPIc)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대도 힘들죠. 30% 정도밖에 바로 취업이 안된다던데...”

여의도에 사는 고씨는 친척 집에 갈 생각이 없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서 고씨는 이번 학기에 휴학할까 고민 중이다. 대기업 구매팀에 취업하고 싶은 고씨는 지금까지 휴학해본 적이 없어서 취업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번 하반기 공채에 서류를 몇 군데 넣어보긴 하겠지만, 영어 점수를 만들 때까지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안다.

“연휴 때 여행 가는 사람들이요? 부럽긴 하죠. 그래도 저는 할 일이 있으니까.”

고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도서관 앞 벤치로 나갔다. 간단하게 싸온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평소에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 되지만 쉬는 날이라 식당 문을 닫기 때문에 점심을 싸오는 편이 낫다. 고씨는 동기들도 휴학한 경우가 많아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느덧 익숙해졌다. 언덕 위에 있는 도서관에서 텅 빈 캠퍼스를 바라보며 고씨는 아쉬운 마음을 억지로 붙잡는다.

   
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많아진다. 캠퍼스에 붙어있는 수많은 현수막
 

하반기 대졸자 공채 준비에 연휴를 잊은 취준생도 있다. 세종대학교를 지난달 졸업한 이주상(27, 남)씨는 이번 휴일에 우리은행 자기소개서와 국민은행 필기시험을 준비한다. “집에 있으면 부모님 보기가 괜히 미안”해서 이씨는 빨간 날이지만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명절인데 친척들은 안 만나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모르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적응돼서 괜찮다.” 무덤덤해진 수험생.

점심시간인 오후 12시 30분, 중앙대학교 근처 음식점에서 만난 이아무개(27, 남)씨는 고시생이다. 공부한 지 2년이 되니 휴일에 빈 캠퍼스를 돌아다니고 몇 명 없는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풍경이 이제 익숙하다. 이씨는 “명절에 그나마 부담이 적어 하루쯤은 푹 잘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식당에는 혼자 밥을 먹는 20대가 몇 명 더 있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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