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봄’은 끝났을까? 최근 KBS가 '길환영 체제' 때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관하는 ‘제2차 규제개혁 장관 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생방송했다.

KBS는 지난 2일 보도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3보1배를 외면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를 전하는데 급급했고 3일 메인뉴스에서 규제개혁 회의를 5꼭지나 할애해 보도했다. <“더 화끈하게 규제 풀어야”…장관들 ‘진땀’>에서는 장관들을 혼쭐내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그렸다. 세월호 참사 원인 중 하나로 무분별한 규제철폐가 꼽히는 마당에, KBS는 대통령의 말만 전하기 급급했다.

지난달 16일 KBS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영오씨의 만남을 중계하지 않았다. 편성의 문제라고 밝혔지만 타 지상파들은 이 장면을 모두 생중계했다. 이틀 뒤인 8월 18일 KBS의 한 간부가 교황 미사 중 대통령을 화면에 잡기위해 노력했다는 얘기가 나왔고 실제 편성본부장이 현장에 전화해 “대통령이 한 컷도 안 나오는데 왜 안 잡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2014년 9월 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길환영 전 사장의 퇴임 직후, KBS는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도를 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동정도 자주 보도했다. 길 전 사장 체제 당시에 비해 보도가 나아졌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점점 KBS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장이 줄어들면서 대통령이 등장하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는 4일 노보를 통해 “언젠가부터 뉴스9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다시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며 “길 사장 퇴진 이후인 사장 공백기에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오는가 했던 우리 뉴스가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실제 지난 한 달간 뉴스9에서 박근혜 대통령 관련 리포트는 15건이 나갔는데 이전 한 달간 나간 리포트가 9건이었던 데 비해 67%나 늘어난 것”이라며 “문제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대통령 보도의 경향성으로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9시 리포트 감으로는 함량 미달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내부 분위기도 석연치 않다. KBS는 4일 자회사인 KBS비즈니스 사장에 고대영 전 보도본부장을 임명했다. 사장 후보였던 고대영 전 국장은 김인규 사장 당시 보도본부장을 지내며 “KBS를 MB방송으로 전락시킨 핵심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KBS는 또 길 전 사장 시절 보도본부장으로 재임하며 세월호 보도에 책임이 있는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을 KBS아트비전 감사로 임명했다.

   
▲ 작년 9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 부쳐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기자회견’에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자회견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KBS 외부에서 벌어지는 KBS에 대한 압박이다. 이길영 전 KBS 이사장이 석연찮은 이유로 이사장에서 사퇴하자 ‘윗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여기에 방통위가 ‘친일 논란’을 빚었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신임 이사로 빠르게 선출하자 정권이 KBS에 다시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KBS노조)도 4일 노보를 통해 “문창극 총리후보자 검증 보도에 대한 방통위의 중징계가 내려지더니 곧이어 ‘문창극 강연이 감동적이었다’는 발언을 한 이인호씨가 이사장으로 유력시되고 있다”며 “KBS를 향해 무언가 일련의 시나리오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영방송 사수와 방송독립 쟁취를 위해 사생결단의 투쟁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본부도 노보에서 “각종 특종상을 휩쓴 KBS 문창극 보도에 대해 중징계를 하겠다는 뉴라이트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과 ‘문창극 강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이인호씨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식이라면 앞으로 KBS에서 백범 김구의 백 자도 못 꺼내게 할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며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KBS이사회 장악을 통해 다가올 총선과 대선의 홍위병으로 쓰겠다는 야욕을 즉각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KBS노동조합 노보(좌)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노보(우)
 

KBS본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처럼 사사건건 개입하는 일은 없어도 최근 (이사장 선임 등을 둘러싼)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정권 친향적 방송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그동안 우려했던 것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를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길환영이 나갔다 해서 KBS가 예전의 공영방송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방송·언론정책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인호 이사 임명 강행과 방통심의위 징계 등이 공영방송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자세”라며 “오히려 문창극 보도가 'KBS 공백기'에 잠깐 일어난 일이라 본다”고 말했다.

한편 KBS 야당추천 이사들은 5일 예정된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5일 이사회에서는 이인호 KBS이사의 이사장 선출이 유력하다. 이규환 야당추천 이사는 “이사회를 앞둔 9시에 우리 입장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며 이사회는 참석하지 않으려 한다”며 “최근 KBS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신임 이사장이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알게 모르게 방송에 관여하려고 한다면 KBS 구성원들이 이를 막아내기 위해 매우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며 “이사회의 존재 이유대로 이를 사전에 막아줘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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