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열었다. MBC와 KBS는 1시간에 걸쳐 이를 생중계했고 SBS는 ‘2시 뉴스’ 편성시간을 30분으로 늘려 뉴스시간 중에 회의를 일부 생중계했다. 이들 지상파 3사는 저녁 뉴스에서도 해당 소식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날 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중대한 골든타임에 들어서고 있고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데도 규제개혁에 속도가 안 나 위기감을 느낀다” “낡고 불합리한 규제를 더욱 빨리 더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눈 딱 감고 화끈하게(풀어라)”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3일 방송3사 메인뉴스의 첫 번째 소식은 박 대통령의 규제개혁 강조 ‘말씀’이 차지했다. MBC뉴스데스크는 “속도감 있게, 체감 가능하도록 규제 혁파하라”는 박 대통령 말을 전했고 KBS 뉴스9는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의 속도를 더 내라고 주문했다. 또 서비스와 노동시장, 서민 불편 해소를 3대 중점 규제 개혁 대상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SBS 8뉴스도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이 너무 더뎌서 위기감을 느낀다면서 눈 딱 감고 화끈하게 규제를 풀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 9월 3일자 방송3사 메인뉴스 갈무리
 

문제는 이날 지상파 TV 방송에서 이어진 뉴스들이 정부가 내세운 규제개혁 프레임, 그리고 이로 인한 효과를 홍보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데에 있다.  

MBC는 <사선규제·용도제한 폐지…건축 '덩어리 규제' 사라진다> <개발제한구역 '주민 힐링 공간'으로…생활 속 규제도 푼다> 등 두 꼭지에 걸쳐 정부 규제개혁의 효과를 홍보했다. MBC는 “아무래도 우리 국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규제 하면 대표적인 게 건축규제 아니겠나. 그래서 정부도 이 건축규제에 상당한 변화를 줄 생각이다” “규제라는 걸 그저 행정관청의 일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우리 생활과 직결돼 있다. 특히 정부는 이번 기회에 우리 서민들의 생활과 생계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크게 손보겠다는 생각이다”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 외에도 SBS는 <‘밀웜’ 먹거리 개발 가능…온라인 인증 간소화>에서 규제개혁으로 인한 효과를 전했고, KBS는 <그린벨트에 캠핑장·야구장 등 수익 사업 허용> <확정일자도 인터넷으로…부동산 업무 개혁>에서 규제개혁 효과를 전했다. KBS는 “오늘 회의에선 민원만 받은 게 아니다. 정부가 직접 몇몇 규제 완화 방안도 발표했다”며 정부의 의지를 강조했다.

방송3사 메인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에 쩔쩔 매는 장관들의 모습을 전했다. SBS와 KBS는 이 소식을 전하는 데 한 꼭지씩을 할애했다. SBS는 <박 대통령 규제 개선 질타에…장관들 ‘진땀’>에서 “박 대통령의 질타에 장관들은 진땀을 흘렸다”며 “박 대통령은 조그맣고 힘도 없는 어머니가 혼자서 10명의 아이를 키워내듯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관심과 열정을 갖고 규제개혁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KBS 역시 <“더 화끈하게 규제 풀어야”…장관들 ‘진땀’>에서 “당초 예정보다 1시간이나 넘게 진행된 오늘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은 수시로 장관들을 다그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규제를 철폐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MBC는 아예 톱뉴스에서 박 대통령이 장관들을 질책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일부 장관들은 박 대통령의 거듭된 질의와 대책 촉구에 진땀을 흘렸다”고 강조했다. 방송3사는 ‘무능한 관료들’의 모습과 ‘무능한 관료들을 다그치며 국민을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통령’을 비교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일부 비판을 담은 뉴스도 있었다. SBS는 <풀었다는 규제, 실제 현장에서는…서류에 발목>에서 “규제 개혁의 중간 점검을 하는 오늘(3일) 회의에서 정부가 보고한 성적표는 만점에 가깝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체감은 다르다”며 “발표용 실적에만 집착하지 말고 규제개혁의 체감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MBC는 재계의 목소리를 전하며 “숫자 줄이기 식이 아닌 내실을 얼마나 알차게 채우느냐에, 규제 개혁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주문했다. 정부의 규제개혁 프레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규제개혁을 더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비판이다.

KBS는 이러한 ‘기본적인’ 비판조차 하지 않았다. KBS는 이 날 뉴스에서 5꼭지에 걸쳐 규제개혁 소식을 보도했다. 4꼭지였던 MBC와 SBS보다 1꼭지를 더 많이 할애했음에도 내용은 전부 박근혜 대통령 ‘말씀’과 규제개혁 효과 홍보에 그쳤다.

규제개혁 회의에 대한 심도있는 비판은 JTBC에서 나왔다. 3일 JTBC 뉴스9는 11번째 꼭지부터 3꼭지에 걸쳐 규제개혁 회의 내용을 전했다. JTBC는 <박 대통령 '규제개혁 속도전' 주문…쏟아진 규제완화 시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고, <대통령 한마디에 규제 와르르…규제개혁도 실적 올리기?>에서 규제개혁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JTBC는 또한 <규제 개혁, 이번에는?…“하나를 풀면 또 다른 규제 생겨”>에서 1998년부터 최근까지의 정부의 총 규제건수를 보여주며 규제 하나를 풀면 또 다른 규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 9월 3일자 JTBC뉴스9 갈무리
 

JTBC는 이 리포트에서 “규제가 만들어진 이유와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지 표면에 드러난 것만 가지고 계획을 하면 결국 나중에 더 (규제를) 늘릴 수도 있다”며 “(규제는) 공익의 이해 상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든가 안전문제 때문에 생겨난다. 세월이 흘러 효력이 없어지는 규제, 불편이 더 큰 악성 규제들만 찾아내 없애야하므로 오랜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느 새 방송사들이 ‘대통령 말씀’이나 연설을 생중계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다. 방송사들이 오후에는 ‘대통령 말씀’을 생중계하고, 저녁 메인뉴스에서는 이를 재방송하는 것이 또 하나의 관례가 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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