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자율성 위기’라는 말은 현직 PD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과 자본 압박, 권력 외압은 ‘위기’를 증폭하는 주된 요소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이 PD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호기라 자신하는 이가 있다. 박건식 MBC PD다. 

28대 신임 한국PD연합회장으로 선출된 박건식 MBC PD(현 MBC PD협회장)는 지난달 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PD들이 극도로 위축돼 있는 상태”라며 “PD들이 지상파를 떠나 케이블로 진출하고 있다. 지상파 규제가 늘고 자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PD들 동력과 열정이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 PD는 악화하고 있는 지상파 재원 구조가 제작 자율성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곳간이 튼튼했기 때문에 프로그램 다양성이 있었다. ‘한지붕 세가족’, ‘전원일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던 배경”이라며 “그러나 지상파 재원이 고갈되면서 공익성 프로그램들이 제일 먼저 편성에서 탈락했다. PD들도 새로운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싶지만 재원 구조가 말라가는 과정에서는 꿈꾸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PD는 “화제가 됐던 ‘아마존의 눈물’, ‘북극의 눈물’ 모두 전파진흥원 협찬으로 제작됐다”며 “지상파 재원 구조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해법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전했다.

   
▲ 박건식 신임 PD연합회장. (사진 = 김도연 기자)
 

그는 이어 “지상파 중간광고가 최근 논란이었는데 각종 프로그램에 숱한 PPL(간접광고)이 들어와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중간광고 규제를 풀고 그 대신 PPL을 막아 프로그램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박 PD는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려는 권력에 대한 대응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합회가 노동조합처럼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사안마다 성명서를 내고 대응하는 건 크게 유효한 것 같지 않다. 임기 동안 방송 정책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상적 투쟁과 노력이 한계에 봉착한 측면이 있다. 노조와 시민사회 모두 고민해 봐야 한다”며 “그 단계를 뛰어넘어서는 정책 기획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중국 시장이다. 박 PD는 “중국은 ‘아빠 어디가’를 영화로 만들었다. 10일 만에 1500억 원 수입을 올렸다”며 “이는 MBC 연간 수입을 능가하는 수치다. 양적인 측면에서 한국 방송사는 조만간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PD들은 코바코 체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오히려 중국 시장이 더 자본주의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계는 명확하다. ‘표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방통위 등이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PD들이 중국 방송에 진출하고 그곳에서 활약하는 것을 지원하고 싶다”며 “반대로 국내외적 교류를 통해 한국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중국 PD들을 교육하는 자리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PD는 PD들 역량 제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퇴직을 앞둔 PD들이 제2의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학계와 교류를 통해 고급 인재들이 미디어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한국 미디어에 대한 수요가 많다. 그들이 이 분야에서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국내외 안팎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세계 PD포럼을 개최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그는 “세계기자포럼은 있지만 PD포럼은 없다”며 “전 세계 PD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관점을 이해하고 연대하면 프로그램 다양성과 품질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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