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유족들을 대변하지 않았다. 1차 협상, 2차 협상 모두 유족들과 교감 없이 타결됐고, 이후 유족들에 의해 거부됐다. 새누리당이야 애초부터 유족들을 대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시키는 유족들의 요구를 일찌감치 잘라냈다.

그럼 누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가족들을 대변했을까? 그들 스스로가 하고 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목숨을 건 단식이 39일째 이어오고 있다. 그가 광화문 한 복판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이만큼이라도 왔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정의당 의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만이 단식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정치가 무력화됐다는 말이 나온다. 중앙일보 20일자 1면 제목은 <의회정치 무력화됐다>이고, 조선일보 같은 날 1면 제목은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 정치>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가 무력화 된 것은 맞는 말이다.

   
▲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주례회동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하지만 위 언론들이 ‘정치가 무력화됐다’느니 하는 이유는 다르다. 여야가 합의를 했는데 장외에 있는 유족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여야 합의가 무력화됐기 때문에 이들은 ‘정치가 멈췄다’고 주장한다. 유가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밀어붙이는 것을 ‘책임정치’라고 명명한다.

물론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한다. 그러나 그 대표권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회의원과 국민의 견해에 간격이 있을 때,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국민을 설득하거나, 국민의 견해에 따르거나. 하지만 현재 세월호 특별법 협상은 두 가지 모두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유족들은 특별법에 수사권·기소권을 넣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는 특검을 가지고 다퉜다. 그 이후에 유족들이 특검 추천권을 언급했다. 양보의 여지를 준 셈이지만 국회는 특검 추천위원회 배분권을 가지고 싸웠다. 이렇게 유족들의 요구는 하나씩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노선에 달했는데, 국회의원이란 이유만으로 양당은 이런 합의를 내놓고 있다.

애초에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유족들이 요구한 만큼, 정치권은 그것을 ‘법적으로 안 된다’고 잘라 말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방안을 찾았어야 옳다. 더욱이 대한변협 등에 의하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주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애초에 특별검사란 제도도 민간에 수사권·기소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런 합의문을 들고 유족들을 설득한다고 해도 유족들이 넘어올 리가 없다. 양보한 안이 아니라 아예 다른 안을 들고 가서 협상해 온 셈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유족들을 만나왔다고 해도 결국 유족들의 뜻에선 멀어졌다.

   
▲ 지난 19일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유가족 대표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고 보면 정치는 예전부터 무력화됐다.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국민의 마음은 정치를 떠났고 투표소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점차 국회의원들은 소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대표가 됐다고 믿는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언론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기소권을 넣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높았을 때는 침묵하다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하자 세월호 정국에 지친 국민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했다는 증명하기 어려운 주장을 해대며 야당과 세월호 유족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마치 국회의원들 간의 합의가 신성불가침인 듯 무조건 존중하고 따르라 한다. 조선일보는 유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간의 합의가 민의보다 중요한 것인가? 사회적 약자의 절규보다 권력자들의 합의가 중요한 것이 언론인가? 전제가 잘못되었다.

이럴 때 일수록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국회의원과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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