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명 ‘세월호 세대’인 고등학생들의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는 지난달 15일부터 25일까지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 15개 고교 2학년생 10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고2 학생 의식조사 보고서’를 21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전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기관과 언론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도는 23.7%에서 6.8%로, 언론은 43.1%에서 12.4%로, 국회는 18.9%에서 5.4%로 하락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전후로 학생들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은 61%에서 24.9%로,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46.8%에서 7.7% 크게 낮아졌다. ‘사회지도층들이 리더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믿음’(26.2%▷6.8%)과 ‘부정부패가 철저히 감시되고 사라지고 있다는 믿음’(17.8%▷6%)도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중인 유가족을 만나기위해 경기도 안산에서 출발해 국회까지 도보행진을 진행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같은 학생들의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은 결국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만약 세월호와 같은 급작스런 사고 등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53.2%(남학생61.5%·여학생40.5%)의 학생이 ‘내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친구들과 의논해서 함께 결정할 것 같다’(22.4%)는 답변이 많았고 ‘인솔자인 교사의 말을 따르게 될 것 같다’는 대답은 15.9%, ‘현장 책임자의 지시에 따를 것 같다’고 답한 학생은 8.5%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이는 세월호 침몰 시 구조와 대응과정을 지켜본 학생들에게 생긴 불신감이 반영된 결과”라며 “세월호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이 대책이 마련됐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안전교육만으로 불신감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학생들 10명 중 9명은 국회에서 이뤄지는 국정조사 등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하고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려 91.2%(전혀 잘 될 것 같지 않다 51.2%, 별로 잘 될 것 같지 않다 40%)의 학생들이 세월호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대통령이 지난 5월 대국민 담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음에도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조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특별법 제정 등 정치권의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학생들의 불신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주관식 응답을 통해서도 “한국에 대한 불신으로 더 이상 언론과 정치인, 기업가들을 믿지 못하겠으며 또래 친구들 수백 명이 죽었음에도 여전히 대통령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해경을 없애는 등 황당한 짓을 하고 있다”, “사고 이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미약한 후대책과 선장 처벌 약화, 쉽게 잊혀졌다는 것이 화난다”, “우리 국민이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정부를 더 감시해야 하고 더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지적을 쏟아냈다. 

한편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보획득 수단 중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  신문(2.2%)이나 방송(12.8%)보다도 인터넷(10.4%)과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20.0%)을 꼽았다. ‘어떤 매체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는 대답 또한 51.4%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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