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사회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정의롭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라는 물음은 비단 한국 카톨릭을 향한 물음만은 아니다. 특히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보듬으며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자부하는 언론에도 교황은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번 교황 방한 중에도 문제점을 노출했다. 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을 중계·보도한 지상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KBS는 고의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16일 시복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식 중인 세월호 피해자 가족 김영오씨의 만남 장면을 생방송하지 않았다.

MBC는 생중계에선 이 모습을 방송했다. 그러나 당일 뉴스데스크에서는 교황이 이례적으로 차에서 내려 김영오씨의 손을 잡았는데도 김영오씨와의 만남을 교황의 카퍼레이드의 일부로 보도했다. 특히 MBC는 김영오씨가 교황에게 한 발언 중 ‘특별법’을 언급한 부분은 보도하지 않았다.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교황과 세월호 유족들의 만남으로 정리할 수 있다”며 “교황의 일정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것이 주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그러나 주류 언론이라는 곳은 이 키워드를 축소·제외하고 보도했다”며 “의미를 축소하려는 모습으로 비쳐졌다”고 지적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노컷뉴스
 
MBC의 한 기자는 “관련 부서에서 세월호 유족과 교황과의 만남을 리포트로 발제해도 나오지 않고 유족에게 세례를 내린 것도 기사까지 다 작성했는데 빠진 적도 있다”며 “교황의 방한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세월호 유족과의 만남인데 우리는 기사도 안 나가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어 “MBC에서는 ‘세월호 유족’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인 것 같다”며 “아이템을 빼버리니 어쩔 수 없이 한 줄이라도 걸쳐 집어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사라는 기관이 세상에 벌어진 중요한 뉴스라면, 보도는 해야 기본인데 아예 전달도 안 해버리니 언론기관으로서 정체성을 포기한 상황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MBC의 또 다른 기자는 “KBS나 MBC나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는 듯 했다”며 “KBS가 결과적으로 그 장면을 내보내지 않아 정권의 충성점수를 1점을 얻었다면 MBC는 보도에서 특별법을 언급하지 않아 1점을 딴 듯한 느낌이라 씁쓸하다”고 말했다.

권오훈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KBS는 공정방송위원회를 통해 (경위를) 따져볼 생각”이라며 “다만 뉴스에는 이 모습을 보도한 것으로 미루어 세월호 유족들이 교황을 만나는 모습을 일부러 방송이 안 되도록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기존 편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실수일 수 있다”며 “빠르게 편성을 변경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책임을 따져볼 생각인데, 특정 컨트롤 타워가 누락시켰다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문제점들은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강성남 위원장은 “반노동·친자본, 친권력·반민중적인 언론의 시선이 너무 오래 되다 보니 우리가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교황이 전달한 메시지에는 언론을 질타하는 내용이 구석구석 담겨져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언론노동자와 경영사주를 분리하고 몇몇 언론인들이 대안언론을 운영하거나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면죄부는 될 수 없다”며 “언론노동자도 대부분 깊은 고민을 하고 있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권오훈 본부장은 “언론의 역할에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 감시도 있지만 진실을 보도함으로써 국민과 시청자를 위로하는 역할도 있다”며 “그것을 교황이 대신 해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언론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고민을 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교황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MBC의 한 기자는 “MBC에서는 교황의 말씀을 듣고 뭔가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라며 “MBC의 강령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도는 충실해야 한다는 문구가 분명히 있고 교황의 말씀으로 그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우리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준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S 홍보실 관계자는 “당일 행사가 30분씩 당겨져 그나마 기존 방송을 끊고 생중계에 들어갔는데 결과적으로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장면을 방송하지 못했다”며 “시복미사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대응이 어려웠지만 KBS가 고의로 그 장면을 누락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MBC 홍보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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