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기사의 수명은 매우 짧다. 철 지난 신문, 잡지를 다시 찾는 이들은 많지 않으며, 종이 뭉치에서 원하는 정보를 골라내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정보가 디지털로 저장되고 ‘데이터베이스(DB)’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검색과 재이용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에버그린(Evergreen)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 언론들도 이런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재고 기사’를 활용해 더 깊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고, 이를 통한 ‘롱테일 전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긴 역사를 지닌 언론사는 그 기간만큼의 기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쌓아만 둔다면 자리를 차지하는 짐이지만, 잘 활용하면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옛 기사가 역사적 사건과 연결될 때 빛을 발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유출된 혁신보고서에서 영화 <노예 12년>에 대한 사례를 들었다.

   
▲ 영화 '노예12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지난 3월 아카데미상을 받자, 뉴욕타임스는 161년 전 작성된 뉴욕타임스의 관련 기사를 트윗했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매체 ‘고커(Gawker)'가 이 기사를 인용보도하면서 더 많은 트래픽을 가져갔지만, 뉴욕타임스는 기존 기사의 활용성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에서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의 풍부한 (기사)아카이브가 다른 경쟁자들에게는 없는 분명한 장점 중 하나”라며 “1851년부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사는 1천472만개”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사진판매를 자동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검색엔진에서 상위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도 모두 구조화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뉴욕타임스는 데이터에 태그(Tag)를 다는 등의 기사 분류 작업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에버그린 콘텐츠’를 새롭게 다듬는 방법, 우리 기사를 좀 더 이용하기 좋은 방법으로 정리하고 포장하는 방법, 그리고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법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영화 '노예12년' 실화에 대한 뉴욕타임스 기사의 일부.
 
일부 한국 언론들도 이런 전략에 관심을 나타내며 작은 실험들을 시도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7일 ‘지난 기사 새로쓰기’라는 기사 코너를 시작했다. 온라인 전용으로 작성된 이 기사는 2000년 이후 45만 건의 기사와 6671명의 인물 DB가 구축된 경남도민일보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경남도민일보는 남해안 ‘적조’를 첫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웹사이트에서 적조로 검색된 674건의 기사를 토대로 2000년 이후 경남에 있었던 적조의 피해와 양태를 정리했다. 이를 통해 서기 161년 삼국사기에 기록된 적조가 최초이며,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적조는 1995년으로 피해액이 308억 원에 달한다는 내용을 뽑아냈다.

그 다음 주 나온 ‘김해 경전철’ 기사는 좋은 호응을 얻었다. 경남도민일보는 매년 600억~700억원의 김해시 예산을 잡아먹는 김해-부산 경전철을 주제로 ‘지난 기사 새로쓰기’를 선보였다. 경남도민일보는 기존 기사 716건을 통해 찬반 논란을 겪은 ‘경전철 도입 과정’과 현재 적자 현황을 요약했다. 특히 기사 중간 내용에 맞는 ‘옛 기사 링크’를 삽입해 독자가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 경남도민일보가 최근 시작한 '지난 기사 새로쓰기'. 이미지=경남도민일보 사이트 갈무리.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국장은 “현재진행형 이슈를 과거 기사를 바탕으로 한 번 정리해보면 새로운 콘텐츠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단발성 기사 수백개를 모아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상황에서 경남도민일보가 ‘에버그린 콘텐츠’라는 개념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기사 중 일부 기사를 모아서 다시 제공하는 언론도 있다. 한국일보는 매주 토요일 ‘일주일 뉴스 따라잡기 7’라는 코너를 운영한다. 주중에 이슈가 됐던 7가지 사안을 정리한 후, 관련 한국일보 기사 링크 2~3개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슬로우뉴스도 토요일마다 ‘슬로우뉴스 몰아보기’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한다. 주중엔 읽기 어려웠던 슬로우뉴스 기사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에 읽으라는 제안이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기사 수명을 연장하는 시도로 ‘에버그린 전략’과 맥이 닿아있다.

   
▲ 슬로우뉴스 몰아보기. 이미지=슬로우뉴스 사이트 갈무리.
 
형식 자체가 ‘에버그린 콘텐츠’에 속하는 기사들도 있다. 새로운 내용이 일어날 때마다 기자가 기사를 업데이트하는 ‘카드 형식 기사’가 대표적이다. 덕분에 독자는 언제나 최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온라인 언론 복스(Vox)의 ‘카드 스택’를 따라 최근 연합뉴스와 민중의소리가 ‘카드 기사’를 시도했다. [관련기사 : “어머 이런 기사 처음이야” 카드형 기사의 등장]

주제가 ‘에버그린’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헬스잡지에 실리는 ‘하체 운동법’이나 ‘호흡법’ 같은 기사는 영속적이지는 않지만 계절 등 시기를 타지 않는 주제다.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에서 “우리가 새롭게 선보인 ‘쿠킹’(사이트)은 레시피(요리법)가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사랑받는 콘텐츠이며, 식사의 종류 재료, 절기, 그리고 평론가들의 추천 등, 더 나은 방법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콘텐츠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미디어랩이 만든 <수입맥주 전성시대>. 이미지=연합뉴스 사이트 갈무리.
 
아직 한국 언론에는 ‘에버그린 콘텐츠’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관련 환경이 조성될 만큼 충분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익현 아이뉴스24 글로벌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상황에서도 ‘에버그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 같은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유익한 콘텐츠”라며 “이런 걸 잘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영화 ‘명량’ 관객이 천만명을 넘으면서 이순신 장군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조선일보 같이 오래된 신문은 관련 콘텐츠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만 모아서 보여줘도 된다. 지금까지 어떤 이순신 영화와 관련기사가 나왔고, 이순신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만 보여줘도 재밌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위해선 기사 분류와 구조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검색에 잡히지 않고 숨겨져 있는 기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탐사보도, 심층보도도 중요하지만 몇 달씩 공을 들여야 한다”며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사 DB를 잘 활용해서 시기적절한, 맥락이 있는 기사를 쓰는 게 더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