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손잡아준 교황…노란 리본도 직접 달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교황은 유족들이 돌아가며 얘기할 때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거나 안아주었다. 이어 5만 명이 운집하고 전국에 생중계된 미사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왔다.

이날 미사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단원고 생존학생 38명이 초대받아 참석했고, 지난달 8일부터 십자가를 메고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을 돌아 대전까지 온 단원고 학생 고(故)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故)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등 유가족 8명과 단원고 학생 2명이 직접 교황과 면담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학일씨가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같이 미사를 집전해 달라”고 말하자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 한겨레 16일자 1면
 
한겨레는 “이날 오전 10시40분께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가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기 직전 경기장 중앙제단 뒤에 있던 제의실 앞에서 세월호 유족 10명을 15분가량 만났다”며 “두 아버지가 전달한 이 나무십자가를 교황은 바티칸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저희 얘기를 교황님이 눈을 마주치면서 일일이 다 듣고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얘기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 유족이 “단식중인 유민이 아버지를 광화문에서 안아주세요”라고 말하자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또한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은 “주교님께 듣기로는 교황청에 계실 때부터 대전에서 팽목항까지 몇 km나 되는지 물으셨다고 한다”며 “교황께서 팽목항 방문에 관심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정이 있으니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교황이 세월호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가족들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노란 리본과 희생자 사진이 담긴 앨범, 생존 학생과 가족들이 쓴 영어·스페인어·한국어로 된 편지 등을 함께 전했다”면서 “유족과의 만남이 끝난 뒤 교황이 직접 선물을 확인해 리본을 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또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해 카퍼레이드를 할 때 교황이 세월호 유족 앞에 차를 세운 것도 의외의 행동이었다”며 “교황은 차에서 내린 뒤 유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위로했다”고 밝혔다.

   
▲ 경향신문 16일자 3면
 
이날 미사에 참석한 고 박성호군의 누나 박보나씨는 “경기장을 돌면서 인사를 하고 가시는데 주교님께서 저희를 보고 세월호 유족이 있다고 하시니까 내리셔서 손 잡아주시고 웃어주셨다”며 “손 잡아주신 것만으로도 엄청 큰 위로를 받았다.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교황의 의지에 부합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있을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도 세월호 참사 유족 600여 명의 참석이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한국천주교는 현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부근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시복식 때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교황을 볼 수 있도록 좌석을 제단 근처로 옮기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가족대책위는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서울시와 협의해 시복식이 진행되는 동안 광화문광장의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하는 천막 등 두 동만 남기고 나머지는 철거하기로 했다. 16일 시복식이 끝나면 오후에 원래대로 재설치할 계획이다.

조중동에는 없는 ‘세월호 리본’…범국민대회도 왜곡·축소·누락 보도

한편 이날 토요판 아침 신문 1면엔 전부 교황의 미사 집전과 관련한 사진과 기사들이 장식했지만 유독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만이 제목에 교황이 세월호 리본을 달았다는 내용을 뺐다. 다음은 교황 미사 관련 16일 아침 종합일간지 1면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교황, 노란 리본 달고 미사…“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간다”>
국민일보 <세월호 리본 단 교황…“물질주의에 맞서 싸워라”>
동아일보 <“치유와 평화” 프란치스코의 8·15>
서울신문 <노란리본 단 파파, 고통받는 한국을 위로하다>
세계일보 <“세월호 슬픔 딛고 하나 되어 협력하길”/ 노란리본 단 교황(사진)>
조선일보 <100만명이 함께 드리는 기도>
중앙일보 <“젊은이여, 결코 희망 뺏기지 말라”>
한겨레 <노란리본 단 교황 “세월호로 고통받는 이들 위해 기도”>
한국일보 <파파의 노란 리본 세월호 눈물 닦다>

   
▲ 조선일보 16일자 1면
 
   
▲ 중앙일보 16일자 1면
 
   
▲ 동아일보 16일자 1면
 
또한 15일 5만 명이 군집한 대전 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버금가는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울광장 범국민대회에 모였지만 이를 중요하게 보도한 신문은 거의 없었다.

경향신문만이 유일하게 사회면 톱기사로 서울광장서 대규모 범국민대회 열렸다는 소식을 전했고 나머지 신문들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사회면 하단으로 배치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10면 ‘간추린 뉴스’란에 1단으로 간략하게 처리했다. 중앙이 밝힌 집회 참석 인원은 경찰 추산 1만2000명, 주최 측 추산 5만 명이다.

   
▲ 경향신문 16일자 9면
 
차라리 보도하지 않은 게 나았을 기사도 눈에 띄었다. 동아일보는 <세월호 시위대 보신각 앞 도로 점거>라는 제목의 6면 사진기사를 통해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일부 시민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법에 보장하라’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던 도중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후 7시 10분부터 10시까지 거리를 점거하면서 종로 일대는 심각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도 이날 같은 장소에서 취재했지만 ‘심각한 교통체증’은 보지 못했다.

   
▲ 동아일보 16일자 6면
 
한편 단식 33일째로 몸이 건강이 악화돼 구급차를 타고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단원고 김유민양 아버지 김영오씨(47)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조사해 달라. 그것을 조사할 수 있는 특별법을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 달라”며 “교황님이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세월호특별법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황님이 특별법을 만들 수는 없다. 국민의 힘이 하나가 될 때 특별법은 이뤄진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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