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을 골자로 한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관련 대책만 135가지로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인데도 이를 보도하는 대다수 언론은 정부정책 ‘홍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두 줄 정도의 우려와 비판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고, 국회가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6차 무역진흥회의에서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개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135개 대책을 발표했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대책의 효과로 15조 원 이상의 투자와 18만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각종 규제완화를 총망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영종도와 제주도에서 추진되는 4개의 대규모 리조트 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 한강 개발, 산악지역 케이블카 설치, 해외 유명 교육기관 유치, 어학이나 요리 교육기관의 외국인 학생 비자 발급 허용, 주식가격 제한 폭 30%로의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제주도와 인천 송도에 외국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방송3사는 12일과 13일 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도가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정책에 대한 우려점은 한 두 줄 정도로 가볍게 처리됐다. 이번 대책에 대한 비판들을 대부분 정부가 ‘넘어야할 산’ 정도로 취급됐고, ‘왜’ 반대하는지 등에 대한 이유는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 
 
SBS <8뉴스>는 12일 3꼭지에 걸쳐 관련 소식을 전했는데, 앞의 두 꼭지에서는 정부정책을 그대로 전달하고, 마지막 3번째 꼭지 <서비스 산업 대책만 세 번째…실현까지 ‘첩첩산중’>에서만 비판적 코멘트를 덧붙였다. “의료법인의 자회사를 허용하고 외국병원을 유치한다는 계획은 노동계 등이, 관광지 개발은 환경단체가 반대하고 있어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복합 리조트 건설도 카지노에 대한 찬반 논란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
 
KBS는 12일자 <뉴스9> <7대 서비스산업 육성…사회적 합의 관건>에서 서비스산업 대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 “이해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 8월 12일자 KBS 뉴스9 갈무리
 
조중동은 국회와 야당을 표적으로 삼았다. 8월1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관광 빗장 푼다는 정부, 國會 빗장 풀까>이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정부의 서비스산업 육성 정책이 실행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만만치 않다”며 “노무현 정부 이래 경제팀 수장들은 의료와 교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익단체와 국회 반대 등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조선은 “결국 국회의 벽을 넘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은 다른 기사 <서비스업 육성책, 매번 국회서 발목>에서 “작년 5월 이후 5차례의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 때마다 서비스업 육성책을 제시했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해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12일자 기사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돼 왔지만 국내 의료계와 시민단체 반발에 막혀 왔다”며 “수도권 관광자원 개발엔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공원 개발도 환경단체의 반대가 심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사설은 좀 더 노골적이다. 중앙은 12일 사설에서 “(그동안) 대책만 요란했을 뿐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업계 반발과 이해집단 간 갈등, 국회의 비협조에 막혔기 때문”이라며 “이번 대책의 성패도 이해집단의 우려와 반발을 어떻게 극복하고 국회 협조를 얻어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역시 12일 사설에서 “국민들 사이에도 “국회가 해도 너무한다”는 원성이 높다. 정치권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주택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등 경제살리기 법안의 처리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며 ”야당은 계층을 나누고 갈등을 부추기는 낡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 언론은 하나같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국회가 마비됐다고 혀를 찼다. 동아일보는 <서비스 규제 풀어 10만 청년 일자리 만든다>는 1면 톱기사 바로 옆에 <세월호法 표류 또 마비된 국회>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는 이 기사에서 “사실상 국회가 마비되면서 주요 법안 처리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했던 관광진흥법 등 19개 민생법안 역시 표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8월 13일자 조선일보 31면
 
조선일보도 정부의 이번 대책을 소개하는 1면 톱기사 옆에 <세월호法 재협상 수용 안되면 野 다른 법안 협조 않기로>라는 기사를 실었다. 사설 <합의 파기에 경제法案 심의도 거부하는 野, 어쩌자는 건가>에서는 “이 나라에는 세월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무리 세월호라고 해도 이것 한 가지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하지 못하겠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는가. 이러니까 야당은 사사건건 발목 잡기만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야당을 맹비난했다.
 
이들 언론보도만 보면 정부의 이번 서비스산업 육성정책은 추진되기만 하면 일자리도 증가시키고 경제도 살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다. 다만 추진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으니 이들을 잘 설득하고 야당의 발목잡기를 넘어서면 된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야당이 별 이유도 없이 반대만 하고 이익집단들이 자기네 이해관계만 생각하느라 경제 살리기 대책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보건의료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의료 관련 규제완화가 사실상의 ‘의료영리화’라고 반발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병원에서 파는 건강보조식품, 거절할 수 있나요>) 문제는 방송3사와 조중동 등에서 이런 목소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8월 12일 JTBC <뉴스9>는 이번 대책에 대한 우려점들을 상대적으로 상세히 전했다. JTBC는 <이번엔 꼭 “영리병원 허가”…의료민영화 우려에 반발>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리병원이 확대되다보면 의료비 폭등과 의료 양극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외국인 콘도 분양 허용…5년 유지 시 영주권 부여">에서는 콘도 자체가 투자자에게 이점이 없는 상품이기에 과연 많은 투자 유치가 일어나겠냐는 회의적 시각을 전했고, <주식 가격 제한 폭 30%로 확대…시장에 미칠 파장은?>에선 "투자 과열을 부추겨 가격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8월 12일자 JTBC 뉴스9 갈무리
 
가장 돋보인(?) 매체는 MBC였다. MBC는 12일 <뉴스데스크>에서 세 꼭지에 걸쳐 정부의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을 전했는데, 보도 내용은 전부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 박근혜 대통령 발언들만으로 채워졌다. 예의상 한 줄 넣어줄 만도 한데, 시민단체나 야당의 우려 목소리는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MBC는 13일 <뉴스데스크>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던 오늘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면서 (중략)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관광진흥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도 발목이 잡혔다”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는 앞 뒤 안 가리고 이윤만 쫓는 ‘규제완화’다.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증개축과 배의 수명 연장 등 감독 없는 규제완화가 비극을 낳았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규모 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만 전달하고, 그로 인한 우려점은 ‘넘어야 할 산’ 정도로만 취급한다. 심지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쟁 때문에 경제를 발목 잡히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네 달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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