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 조선일보가 연일 법원을 때리고 있다. ‘종북’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판결이 나온 지난 11일 1면 톱기사와 3면 전체를 할애해 해당 판결을 비판했고, 12일과 13일에는 기사와 기자수첩, 오피니언 면을 통해 법원을 비판했다.
 
지난 8일 서울고법 민사13부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과 그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를 ‘종북주사파’라고 말한 변희재씨에게 명예훼손 책임이 있다며 1천5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남북이 분단됐고 국가보안법이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종북으로 지칭될 경우 반사회적 인물로 몰리거나 평판이 훼손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조선일보도 2천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 해당 발언을 한 변희재씨는 물론 이를 인용해 기사를 쓴 뉴데일리 기자 2명, 조선일보 기자 2명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공당 대표에 대한 정당한 의혹제기와 이를 보도한 언론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게 되면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11일 기사) 조선일보는 ‘종북’이라는 비판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며, 이를 옥죄는 것은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 8월 11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수구꼴통’ ‘파쇼’ ‘친일파’ ‘반민족주의자’ 등의 표현도 명예훼손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방희선 동국대 법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좌파 사람들은 우파를 수구 꼴통, 파쇼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불렀다고 처벌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법원이 판결할 때 진보적 가치에 좀 관대하고, 보수적 가치에는 엄격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고,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해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세력이 ‘종북’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생각해보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북한 김정일 일가가 얼마나 못됐는지를 스스로 외치지 않으면 종북이 되는 사회가 아닌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이 한 게 아니다’도 아니고 ‘확신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는 말을 하면 헌법재판관 후보자 자리에서 낙마하는 사회다. 
 
조선일보는 11일 3면 기사에서 이정희 의원이 연평도 때 정부를 비난했다는 점,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점, 3대 세습을 비판하지 못한 점 등을 소개하며 “그를 둘러싼 정체성 논란은 늘 화제가 돼 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든 그것도 ‘표현의 자유’ 영역이 아닌가? ‘종북’이라고 말할 ‘표현의 자유’는 있는데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연평도포격 때 정부를 비난할 ‘표현의 자유’는 없는 것일까?
 
8월 12일 조선일보 4면 기자수첩 제목은 다음과 같다. <종북을 종북이라 부르면 안 되는…‘화성에서 온 판결’인가>.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13일자 조선일보 29면에 실린 시론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 중 하나인 북한의 국가 이념이자 종교인 주체사상을 신봉했고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를 선동했다는 것만큼 종북의 강력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 8월 12일자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종북을 종북이라 부를 자유’이다. ‘불온한 이념’을 주장할 자유는 없지만 그 불온한 이념을 ‘종북’이라 부를 자유는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이념’으로 넘어간다. 조선일보가 해당 재판을 내린 재판장의 과거 재판 경력까지 털어버린 이유다. 조선일보 8월12면자 4면 기사 제목은 <종북 지적에 배상 판결 내린 재판부는 광우병‧천성산 터널은 보수 언론 책임 엄하게 묻고 BBK 사건 땐 1심 뒤집고 주간지 ’시사인‘ 손 들어줘>이다. 그러면서 두 재판장의 얼굴까지 공개했다. 재판부가 보수언론에는 적대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조선일보는 그간 보수언론답게 ‘법질서’를 매우 강조해왔다. 노동자들이나 시민단체의 시위를 ‘떼법’ 혹은 ‘불법’이라고 때리기 일쑤였다. 법관의 양심과 독립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를 떠올려보자.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 재판’ 개입 논란으로 법원 안팎에서 사퇴 압력을 받자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8월 12일자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2008년 8월 13일자 사설에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건 일반인도 모두 알고 있는 법언”이라며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헌법이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재판부를 흔드는 건 조선일보가 아닌가. ‘떼법’ ‘불법’ 행위를 비판하다가 본인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재판부가 수상하다고 공격하는 건 정당한 걸까. 
 
조선일보는 ‘종북’이라는 표현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계속하고 싶다면 종북이라는 말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조선일보가 재판부가 의심스럽다며 ‘법원 때리기’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법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요구에 대해 ‘떼법’ ‘불법’ 운운하기 전에 왜 그들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호소하는 지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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