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내부 취재 정보의 유출과 관련해 자사 기자들을 경찰 수사에 맡기겠다고 했으나 서울지방경찰청은 “SBS의 수사 의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SBS 간부들이 경찰 수사를 언급한 것이 기자를 대상으로 한 ‘엄포’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복수의 SBS 기자 얘기를 종합해 보면, 지난 11일 오전 회의에서 이형극 SBS 특임부장이 “이미 수사 의뢰를 했다”는 취지의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 한 기자는 “11일 오전 회의에서 특임부장이 ‘수사 의뢰했다’며 (유출) 관련자가 먼저 와서 말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진짜 의뢰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면서 “경고 차원에서 끝낼지 아니면 진짜 사법처리를 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 관계자는 12일 SBS의 수사 의뢰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다. SBS 이름으로 들어온 수사 의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 수사 의뢰’가 내부 정보 유출자의 자수를 위한 ‘엄포’가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지난 8일까지만 해도 “조만간 수사 의뢰가 들어갈 것”이라며 강고한 입장을 표명했던 이형근 특임부장은 12일 “경찰에 수사 의뢰 했느냐”는 질문에 “나중에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따로 발표하겠다. 개별적으로 말하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만 답했다. 

SBS는 지난달 자사 기자가 사내 정보망에 올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인천지검의 수사 정보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두 시간여 만에  SNS 지라시로 유통된 사태를 심각하다고 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도국 기자 108명을 경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이 기사 링크 : ‘SBS 보도국, 경찰에 자사 기자 수사 의뢰하나?’)

경찰 수사, 지나치다 VS 필요하다

SBS가 자사 기자를 상대로 경찰 수사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후, SBS 안팎으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취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것에 대해서 충격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경찰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다수였지만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수사가 필요하다는 기자들의 의견도 있다.

SBS의 다른 기자는 “최근 ‘강서 재력가 살인 사건’ 주요 증거물인 뇌물장부를 경찰이 은폐하려다 들통 난 사건을 보면 경찰이 어떤 조직인지 알 수 있다. 금품수수 검사의 이름이 기재된, 매우 중요한 장부를 내부에서만 공유했던 것이 경찰”이라며 “이런 조직에 기자의 목줄이라고 할 수 있는 취재 수단과 정보를 내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도 지난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부적으로 해결 방법이 전무하다면 수사 의뢰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재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뜻을 묻지 않고, 무턱대고 경찰 수사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경찰 수사로 인한 기자의 취재권 침해와 취재원 비보호 문제가 미칠 악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동찬 언론연대 기획국장은 “경찰 수사를 하게 되면 정보원 신상과 기자 개인의 취재 내용이 외부로 알려질 위험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기자가 취재를 하는데 위축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평기자와 간부가 머리를 맞대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대화 방식을 택하지 않고 경찰 수사를 우선 생각한다는 점은 문제”라고 밝혔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사 내부 정보가 고스란히 외부로 유출되는 문제는 언론 윤리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이 사태를 법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수사기관이 언론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SBS 내부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논의를 했는지, 정보 유출과 관련해 어떤 자정 노력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 수사를 동원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통신사의 한 기자는 “지라시로 내부 정보가 유출되는 사태는 내부 자정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수 있다”며 “SBS가 반복될 수도 있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기자들이 보통 외부 기관의 개입을 꺼려하는 기질이 있는데 방치하면 언론사가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기자는 “누군가는 유출되는 정보를 쉽게 보고 지나치겠지만 취재원이나 언론의 감시 대상인 정부·기업 관계자에게 유출되면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어려운 문제이지만 근절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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