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리에 사는 억조 할머니는 몸무게가 40kg도 나가지 않는다. 허리는 구부정해 걸음 걷기가 힘드시다. 그런 할머니가 지난 주 경찰서장을 향해 구부정한 허리를 더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말하셨다. 그만해 달라고. 왜 이런 세상이 왔느냐고 우셨다. 이곳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마을에서 억조 할머니를 비롯한 10여명의 주민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70대 노인이다.

삼평리에는 총 7개의 송전탑이 들어선다. 그 중 마을을 관통하는 것은 22호, 23호, 24호 3개다. 특히 23호기의 경우 불과 100미터 안에 민가가 있을 정도다. 이미 22호와 24호는 공사가 완료됐고 23호는 공사 도중 중단돼 송전탑을 세우는 일만 남았다. 할머니들은 22호-23호 송전선로 구간의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보상 때문이냐고? 할머니들은 “돈 십 원짜리 하나 필요 없다. 우리는 돈이 싫다”고 말씀하신다.

지난 21일 새벽 23호 송전탑 공사가 재개됐다. 2012년 9월 공사가 중단된 지 2년 만이다. 2년 전 할머니들은 22호, 24호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려 노구를 이끌고 해발 350m의 산꼭대기까지 올랐으나 결국 완공됐다. 당시 한전은 용역을 동원했고 할머니들은 ‘달랑’ 들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한 할머니는 단기기억 상실증에 걸리셨고 또 다른 할머니는 한쪽 청력을 상실했다.

공사가 재개되면서 그 때와 같은 악몽이 반복되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5일)도 상황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오늘(5일) 오전 노란 조끼의 한전 직원들은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의자 채 들어내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옆에 경찰이 있었지만 경찰은 가만히 있었다. 경찰 서장이라는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고 말했다. 오늘 오전 4분의 할머니가 병원으로 가셨다.

   
▲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21일 재개된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다 경찰에 끌려 나가고 있다. 사진=청도345kV송전탑반대대책위
 

   
▲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21일 재개된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다 쓰러져 실려 나가고 있다. 사진=청도345kV송전탑반대대책위
 

   
▲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21일 재개된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다 쓰러져 들려 나가고 있다. 사진=청도345kV송전탑반대대책위
 
무엇보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이 같은 경찰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다. 이곳에서 경찰은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대응 수위보다 한층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의 조명을 받지 못한 현장에 대한 자신감’일 테다. 그게 아니라면 이 적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불과 10일 만에 연행 18명, 응급후송자 8명, 부상자 속출이라는 수치가 나올 수 없다. 만약 도시였다면 혹은 여론의 조명을 더 받았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다년간의 싸움으로 할머니들은 지쳤다. 특히 간헐적인 싸움과 상시적인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천막농성장과 고공농성장을 오가며 여전히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나 역시도 할머니들이 싸우고 쓰러져 병원에 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글로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언론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상황이기에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분통이 터진다.

억조 할머니도 오늘(5일) 오전 병원으로 가셨다. 할머니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며 죽고 싶다고만 하신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버티케 하는 힘은 연대다. “우쨌든동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목숨 걸고 하는 데 까지는 해야지. 우리만 하나. 아무도 없을 때는 억시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대책위원회에서도 많이 와서 안도와 주나. 농성장에 연대오는 사람들도 많고 이제 우리 식구도 많이 늘어서 든든타.”

오늘(5일)부터 한전은 본격적으로 공사장 정문을 통해 물품과 자재 등을 반입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날이 개자마자 헬기를 통해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서두를 것이 뻔하다. 삼평리 할머니들은 또 연약한 몸을 던져 “공사 중단”과 “지중화”라는 당연한 요구사항을 외칠 것이다. 이 할머니들의 외침이 헬기소리와 중장비의 굉음에 묻히지 않도록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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