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딱 두 번. 딱 두 번 쉴 수 있었다. 케이블 방송 씨앤앰(C&M)의 한 협력업체 직원 최인규(37, 가명)씨는 주말에도 고객을 방문해야만 했다. ‘강성독촉’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울리면 퇴근길에도 차머리를 돌려야 했던 인규 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에도 주말 당직을 서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 뒷모습을 아내 이수경(32, 가명)씨는 물끄러미 바라봐야만 했다. 비정규직 노조가 생기기 전 일들이다.

“다른 협력업체 사장들은 직원이 결혼하면 축하금을 준다는데 남편 업체 사장은 결혼 때문에 일하지 못한 걸 월급에서 빼더라고요. 또 결혼 전 여름휴가를 떠났는데, 심하게 교통사고가 났어요. 남편이랑 같이 입원했죠. 며칠 만에 남편 회사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러고선 ‘언제 나올 수 있느냐’고 빨리 나오라고 독촉하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어요.”

30일 미디어오늘이 만난 수경 씨는 결혼 2년차 치위생사(치과에서 치과의사의 진료를 보조하고 환자의 스케일링 등 위생에 관한 업무를 행하는 의료기사)다. 남편 인규 씨는 햇수로 10년차 설치 및 유지보수(AS) 전문 기사다. 인규 씨는 씨앤앰 협력업체의 직장폐쇄로 거리로 내몰렸지만 수경 씨는 의외로 덤덤했다. 수경 씨는 “서로 대화를 많이 해요. 파업을 한다길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신혼인데 벌써 파업만 두 번 겪네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 이수경(가명)씨가 지난 27일 서울 면목동의 한 시장에서 희망연대노조 비정규직지부에 연대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인규 씨가 조합원으로 있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지난해 설립됐다. 2013년 파업을 통해 케비지부는 원청 씨앤앰, 협력업체와 ‘포괄협약’에 합의했다. 노사상생을 목적으로 협력업체 변경 시 고용을 승계하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근절하자는 취지의 협약이었다. 그러나 올해 업체 교체 과정에서 기존 협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74명이 해고됐다. 노조의 합법 파업에 협력업체 사장단은 직장폐쇄로 맞서고 있다.

“전 노동조합 이런 거 잘 몰랐어요. 그래서 작년 첫 파업 때 많이 불안했어요. 파업은 ‘무조건 안 좋은 거다’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제 직장이 남편 직장처럼 직위‧계급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지…. 파업하면 끌려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너무나 힘들게 일하니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한 것이고 권리를 말하는 것이겠죠. 지금은 맛있는 거 해주고 ‘얼른 농성장으로 가’라고 말해요. (웃음) 빨리 해결돼야 하니까. 다들 너무 힘드니까.”

인규 씨는 현재 병원을 오가며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뙤약볕 밑에서 계속된 농성이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가족들은 빠른 해결을 원하지만 최종 책임자이자 사용자인 원청은 묵묵부답이다. 씨앤앰 관계자는 29일 “(파업으로) AS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른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조금 더 기다린 뒤 돌아오면 업무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 사내에서 나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영수 희망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장은 30일 “씨앤앰은 대주주 MBK, 맥쿼리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내부에서 어떤 의견이 나오더라도 대주주가 결정하지 않는 한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30일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입주해 있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셜센터 뒤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원청의 외면에 고통 받는 이들은 역시 직원의 가족들이다. 노동 환경 및 불안정 계약 개선과 상생금을 포함한 복지 확충 등을 요구하며 지난 1일부터 서울 광화문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진수(40, 가명, 희망노조 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소속) 씨 가족의 고민도 이와 맞닿아 있다. 진수 씨 아내 김진희(34, 가명)의 걱정은 생활고다.

“그동안 대출을 받아서 생활을 했어요. 현재 남편이 파업이라 지인 생활비를 빌려서 살아가고 있어요. 아빠가 안 들어오니까 어린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있어요. 밤마다 무섭다고 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노조 일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는 상태죠. 남편이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니까. 노조 생기기 전에는 정말 심한 욕도 많이 듣고 업무량도 상상을 초월했어요.”(김진희, 주부)

진희 씨의 말처럼 앞서 인터뷰한 수경 씨도 생활고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아직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라서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고용의 불안정성이 해당 직원뿐 아니라 그의 가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자녀도 없고 현재 제가 벌고 있는 상태라 빠듯하게 버티고 있어요. 만약 임신해서 몇 달 일을 쉬는 일이 발생하면…. 걱정부터 앞서요. 신랑 주변에 갓난아이를 키우는 젊은 아빠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남편에게 ‘앞으로 태어나게 될 아이를 키울 때만큼은 노조 간부 같은 건 맡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렇게 바가지를 긁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쪽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너무나 잘 아니까.”

희망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는 23일, 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는 30일째 서울 광화문에서 노숙 농성 중이다. 노동자와 그 가족 모두 장기 투쟁에 지쳐가고 있지만 수경 씨는 “끝까지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현장에 돌아가도 걱정이에요. 농성하고 계신 분들뿐 아니라 소비자분들도 AS가 제대로 안 돼서 불편하시지 않을까요. 회사로 돌아가도 직원 분들은 뙤약볕에서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한동안 고생을 하실 것 같아요. 연애할 때 남편에게 ‘오빠 일 창피해. 다른 일 구할 수 있잖아’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하고 받아오는 월급 명세서를 보면 안쓰러워요. 정당한 권리를 보장 받아야죠. 비정규직 노조가 꼭 이겨서 스스로 가치를 높이고 권리를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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