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은 방송·통신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 5명 가운데 1명이 간접고용 노동자일 만큼 한국사회에는 ‘불안한 일자리’, ‘나쁜 일자리’가 많다.

그러나 케이블 방송·통신업계의 성장은 간접고용과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1일 고용노동부가 공시한 케이블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씨앤앰(C&M)의 간접고용비율은 62%다. 노동자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하청‧도급업체 소속이다. 재하도급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기사링크 : 이주 노동자 집에 셋톱박스 3개나 달린 까닭

미디어오늘은 지난 28일 국회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이 분야 전문가 3인(김철희 은수미의원실 보좌관,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종탁 희망연대노조위원장)과 함께 간접고용 해법을 모색하는 대담을 나누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 언제부터 통신업계 하도급 구조가 심각해졌나?

   
▲ 이종탁 희망연대노조위원장 (사진 =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종탁 : 2010년까지는 원청에서 정규직 형태로 업무를 수행했다. 케이블 산업이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 체계로 통합이 되면서 간접고용이 가속화했다. ‘협력업체’라고 불리는 하청업체가 다시 설치·AS·영업을 외주업체에 준다. 이런 방식으로 5단계까지 외주화한 걸 확인했다. 원청은 관리 필요성을 느꼈다. 영업 실적 지표, 해피콜과 CS(Consumer Satisfaction, 고객만족) 등. 노동자가 하는 일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하청의 등급을 매긴다. 일상적인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등급은 성과금과 연관이 있다. 협력업체 노사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 고용형태공시를 보면 씨앤앰 간접고용률은 62%다. 무척 높은 수치인데.

안진걸 : 그 수치에는 재하도급이 포함돼 있지 않다. 삼성전자서비스 고용형태공시를 보면 간접고용이 50명~60명 밖에 안 된다. 통계에서 만 명이 사라졌다. 집계되지 않는 인력이 많다. 간접고용은 통신업계에 국한한 현상이 아니다. 자본이 가능하다고 싶으면 핵심 업무라도 외주화한다. 고용·산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본부와 우체부 관계처럼 케이블 기사 가운데서도 개인사업자로 영업을 뛰시는 분들이 많다.

원청이 협력업체에 횡포를 부려 (협력업체) 수익을 악화시킨다. 지역별 독점 구도가 깨지면서 협력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협력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소속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다시 재하청을 주는 것뿐이다. 티브로드, 현대HCN, CJ헬로비전 모두 비슷한 구조다.

- 간접고용은 어떤 점이 문제인가.

김철희 : 크게 3가지다. 첫째, 과도한 노동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둘째, 고용의 권리와 사용의 의무를 분리시킨다는 점. 셋째, 사회 구조 측면에서 불안한 일자리, 자영업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노동권은 나를 고용한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담하고 내가 고용하는 근로자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간접고용은 이런 대전제를 박살낸다. 노동권을 해체한다.

직접 고용된 사람의 노동권만 보장했던 과거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 간접고용된 이들도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을 직접 고용한 사람뿐 아니라 실질 이득을 얻는 사용자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의 트렌드가 바뀌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통신업계로 주제를 좁혀서 얘기해 보자. 원청과 하청은 어떻게 계약이 이뤄지는가.

이종탁 : 협력업체(하청)는 자체 매출을 발생시킬 수 없다. 원청으로부터 받는 설치 및 AS 단가수수료가 주수입이다. 협력업체는 단가수수료가 인상되지 않으면 경영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청이 각종 경영지원금으로 하청 수입을 보전했는데, 지금은 단가수수료만 남았다. 단가수수료도 2012년 전후로 인하했다.

이런 상황에서 협력업체 사장이 기존 수입을 보전하려면 일하는 노동자를 쥐어짜야 한다. 그리고 쥐어짜는 방법은 일을 무지하게 시키는 거였다. 그래서 옥상이든 맨홀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게 케이블 하청노동자다. 작년에 노조 만들면서 가장 슬펐던 것은 아이들과 손잡고 놀러가고 싶다고 절실하게 말하는 노동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다들 힘들었다. 원청이 자기 몫을 줄이면서 경영 계획을 세우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 비에 젖은 전신주를 절연 장비 없이 올라가더라. 보기에도 근로조건이 열악하다.

이종탁 : 근본적으로 원청이 안전 공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 하청노동자들이 스파이더맨처럼 공중을 날라 다니는 건 공중으로 케이블을 띄우는 게 공사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옮겨 일반 사람들이 오가도 큰 문제가 없는 시스템으로 투자를 하면 될 텐데…. 맨홀 밑에 공사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협력업체가 산재 처리를 하면 망한다는 거다. 최근 씨앤앰 협력업체에서 작업 중에 사망하신 분과 허리를 크게 다치신 분이 있었다. 이 업체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벌금 1억을 받았다. 원청이 지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문을 닫았다. 감정노동 측면에서도 케이블 노동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협력업체가 아닌, CS와 해피콜을 담당하고 있는 원청이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뒤 ‘지난 10년~15년 인생이 참 뭐 같았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협력업체가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다.

   
▲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사진 = 이치열 기자 truth710@)
 
- 간접고용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김철희 : IMF 이후에 아웃소싱이 유행이었다. 특히 고도의 위험 업무에 대한 아웃소싱이 두드러졌다. 어떤 근로자가 불만을 강력하게 성토했을 때, 사업주가 들어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그걸 아웃소싱했다. 중장기적으로 자기 경영의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니까. 비핵심업무래도 함부로 간접고용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청, 재하청 등 한 기업을 유기적으로 완결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최종 사용자가 책임을 지도록 법을 설계해야 한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 원청의 책임을 확대한다면 위험에 대해 노사가 협의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맨홀에 사람 대신 로봇을 집어넣거나 기업이 위험 업무와 관련해 시간과 인력을 더 투자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 노동 같은 경우도 근로자가 원한다면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보급할 수도 있다. 이런 요구를 국가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기업이 1차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맞다. 지금은 거의 위장 도급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의 모럴해저드다.

안진걸 : 그러면 안 되는데 군도, 민란의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웃음) 내가 어디에 고용된 것인지 또 회사와 고용의 의미는 무엇인지 간접고용은 혼란스럽게 만든다. 고용시장 자체가 통제 불가능한 무질서 영역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현대자동차도 앞으로 공장을 외주화하지 않겠나?(웃음). 방송·통신업계는 산업 자체가 외주인데….

- ‘위장도급’도 성행하고 있다.

김철희 : 협력업체 사장 입장에서는 ‘사람이 곧 돈’이다. 얼마나 사람을 끌어올 수 있느냐에 따라 더 많은 물량(일감)을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협력업체 사장의 이해와 무관하게 인력 운용이 통제돼 있다. 외장은 도급이지만, 사람마다 근로 계약을 체결한 뒤 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성과를 보상하는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하청업체를 ‘하청업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 파견회사는 원청의 일개 파트(부서)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업자 입장에서 ‘비정규직 간접고용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산재‧고용‧노사관계 등에서 발생하는 책임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이 한국 사회의 선택지에 있는 게 현실이나 사회 합의를 통해 제정된 법이 그 암울한 선택지를 지울 수 있어야 한다.

이종탁 : 자본이 노다지를 캐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도 원청과 합의가 끝났는데도 협력업체와 지지부진한 이유가 뭘까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런 재하도급 방식이 황금밭이었던 셈이다. 이걸 통으로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원청 사용자나 협력업체 사용자들에게 ‘노조를 반으로 줄인다한들 반은 남는다’ ‘그들이 사용자에 침묵하고 모든 걸 수용하는 절반으로 남을 것 같느냐’ ‘향유했던 걸 내려놓는 연습을 하시라’ 라고 말하곤 한다.(웃음) 기존 방식이면 이 바닥에서의 평화는 아마 불가능할 거다.

- 케이블 통신업계에서 미래를 그리기 어렵겠구나 생각도 했다.

이종탁 : 이 바닥 노동자들을 보면 미래가 없다는 상실감, 두려움이 큰 것 같다. 그런데 4년제 대학을 나온 친구들이 군대를 갖다오고 나서도 이 바닥을 벗어나지 않더라. 그래서 물었다. 왜 다시 왔냐고. “그래도 여기는 노조가 있고 기본급이라도 주지 않느냐”라고 답했다. 이곳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끈이라는 거다. 내가 묵묵히 일을 하면 미래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그런 측면에서 간접고용을 막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원청이 쌓아놓은 돈이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김철희 : 노동자들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회다. 더 큰 두려움은 이런 현상이 세대를 건너갈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 청년 실업보다 미래의 실업 충격이 더 크지 않을까. 왜냐하면 전체 고용시장이 위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협력업체 하나 떨어뜨려주고 인원을 늘려야만 일자리가 생기는 식이다. 그동안의 정부가 대기업 중심 전략을 고수하면서 일자리를 좋지 않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 2기 최경환 경제팀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내리나

김철희 : 소득을 아래로 내려 내수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의미있다. 소득 중심의 선순환 경제가 성공하려면 안정성과 장기 안목이 필요하다. 꾸준하게 (내수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어떤 정권이 잡든 몇몇 대기업 주도 경제가 아닌 내수 중심의 경제 운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안진걸 : 최경환은 ‘줄푸세’ 전도사다.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비정규직, 내수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지적했던 것을 받아들인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현재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돈 벌어봐야 교육비, 통신비, 의료비 쓰면 남는 게 없다. 소비할 여력이 없다. 부채에 허덕이는 가계가 태반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때만이 경제는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떨어지더라도, 내수로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

- 해법이 있나. 

   
▲ 김철희 공인노무사(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 보좌관, 사진 =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철희 : 일단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에서 협력업체 교체 시 소속 노동자의 고용승계를 인정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협력업체 노동자는 상법상 ‘영업 양도’가 아닌 ‘계약 변경’으로 본다. 쉽게 말하면 현행 규정 아래서는 하청 노동자는 손쉽게 해고 당할 수 있다. ‘원하청교섭의무화법’도 만들어 놓았다. ‘원청 사용자가 결정하는 근로조건에 대해 협력업체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는 교섭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입법 시도한 것이다.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게 은수미 의원과 을지로 위원회의 목표다.

안진걸 : 한 기업의 핵심 업무만큼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본다. 또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제가 재하도급 현황 공개 등 구체적인 자료를 공시할 수 있게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방송·통신업계의 경우 공공재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산업보다 엄밀한 규제가 요구된다. 산업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법제를 강화해서 ‘차라리 직접 고용하자’라는 식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종탁 : 앞서 말했지만 원청이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웃음) 하청업체에 대한 지원 시스템을 만들던가 아니면 직접고용을 하던가. 그게 안 된다면 이익 공유제, 성과 공유제와 같은 제도까지 고려해 볼 수 있다. 케이블 산업이 공공재라고 한다면 산업으로 들어오는 자본의 유형도 따져야 한다. 씨앤앰 대주주 ‘MBK’와 ‘맥쿼리’는 사모펀드다. 이들이 방송 공공성에 적합한 자본이었는지 아니면 먹튀인지 제대로 감시하고 규제할 필요가 있다. 외국 자본이나 사모펀드 비중을 낮추는 게 맞다고 본다.

하나 더. 인터넷에 ‘티브로드’를 검색하면 수천 개 이상의 사이트가 뜬다. 티브로드는 ‘온라인 영업 조직은 자기와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불법 조직의 영업을 받아서 설치를 하고 있다. 규제와 통제가 필요하다. 원청의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영업이 방송 재인허가 요건으로 명시된다면 통신업계의 간접고용 폐해는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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