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DNA 감식결과가 나왔다. 과학적인 DNA 감식 결과이니 해당 시신이 유병언 전 회장일 가능성은 높다. 각 언론에서는 해당 시신을 유병언으로 단정 짓고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유 회장 죽음에 대한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언뜻 봐도 유병언 회장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이상한 지점이 많다. 도피 18일 만에 주검 대부분이 부패했고, 부패할 때까지 주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 의아하고, 시신을 수습한 경찰이 너무도 쉽게 이를 노숙인으로 단정 짓고 40일 넘게 시신을 방치했다는 점도 그렇다.

그러니 다양한 의혹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비교 대상이 된 DNA 샘플이 유 회장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추정도 있고, 유 회장은 살아있고 해당 시신은 신원불명의 시신이란 주장도 있다. 한 구의 시신을 둘러싸고 이처럼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도 드물 것이다.

언론은 이것이 검찰과 경찰의 헛발질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사건 초기 검·경은 유병언 회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체포에 소극적이었다. 언제나 한 발 늦은 ‘급습’에 수사당국이 유병언 회장 그림자라도 본 것이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대대적인 수사인력을 동원해 체포작전에 나섰지만 결과가 이 모양이다.

   
▲ 조선일보 7월 23일자. 3면.
 
그런데 언론은? 세월호 참사 초기 구조작업에서 드러난 국가기관의 총체적 문제보다 유병언 개인의 비위사실에 집중했다. 그를 세월호 참사의 ‘알파와 오메가’로 만든 것은 언론이다. 유병언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준 것도 언론이다.

검찰의 금수원 진입, 대대적 검거작전을 생방송까지 해가며 중계한 것 역시 언론이다. 사고 초기 진도 팽목항 현장에 수백명의 잠수부들이 구조작업에 매진하고 각종 장비가 동원돼 입체적 구조를 벌이고 있다는 정부의 말을 그대로 받아쓴 것도 언론이다. 거짓말은 정부가 했지만 국민들에게 소리친 것은 언론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언론은 이른바 ‘유병언 괴담’을 두고 “검찰과 경찰의 책임이 크다”고 준엄하게 꾸짖는 다. 중앙일보 홍권삼 기자는 23일 <포졸만도 못한 검경수사> 제하의 기자칼럼에서 “상당수는 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며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검찰과 경찰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 역시 같은 날 <인터넷엔…설설 끓는 음모론>에서 인터넷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을 전하면서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인력을 동원한 검·경이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시신이 발견되자 사망 원인과 의문점을 두고 각종 음모론이 쏟아진 것”이라며 “검·경을 믿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중앙일보 7월 23일자. 29면.
 
이들 언론의 지적은 옳다. 유병언 사체 발견으로 검찰을 비롯해 수사당국의 무능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수사권이 없는 언론이 수사당국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적 조건도 감안해야 하지만 불신의 책임은 그 수사당국의 얘기를 고스란히 전한 언론에도 있다.

DNA 감식결과가 나왔지만 의혹은 이어지고 있다. 이 의혹을 단순하게 ‘괴담’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의혹을 취재하거나 명백하게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신으로 나온 얘기라면, 그 불신은 향후 검찰과 언론이 풀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검찰발’ 기사만 쏟아져나오는 현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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