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언론 보도는 유병언으로 시작해 유병언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 전 세모그룹 회장의 추격전이 방송과 지면을 통해 펼쳐졌고, 언론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유병언으로 모았다.

언론이 유병언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것은 지난달 4월 21일, 검찰이 유병언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다. 이후 언론의 유병언 보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물론 세월호 참사 배경에 유병언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고, 정관계 비리도 연루돼 그에 대한 수사가 세월호 원인규명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다만 그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사고 초기 대응과 해경의 구조과정에 대한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제기됐을 때도 언론은 ‘유병언’ 외길이었고, 이는 대부분 검찰 발 받아쓰기였다. 정작 사건 초기 검찰은 유병언 신변확보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언론은 ‘유병언 괴물’ 만들기에 시선을 모았을 뿐, 검찰의 수사 문제에 대해서는 잘 지적하지 않았다.

   
▲ 22일 경찰은 지난달 12일 순천시 서면 학구리의 매실밭에서 DNA 감정결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유 전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안치된 순천의 모 장례식장에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언론에서는 유병언의 각종 불법혐의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정황 포착’, ‘소환 절차 착수’ 같은 기사만 나왔을 뿐 검찰의 소환은 그런 보도가 나온 한참 뒤에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검찰이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검찰이 유병언에 대한 소환을 통보한 것이 참사 한 달여가 지난 5월 13일이었고 이를 거부하자 1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때부터 언론보도는 유병언에서 구원파로 확대된다. 구원파 집결지로 알려진 금수원에 지상파·종편 할 것 없이 생중계가 이어졌고 유병언과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유병언 금주 내 결판”, “주내 검거해 법정 최고형 심판 받게 하겠다”는 검찰발 보도가 이어졌다. 구원파의 ‘금수원 농성전’을 생중계하던 언론은 유병언이 도피했다는 보도를 시작했다. 서울, 순천, 전주, 해남 등 전국 각지에 유병언이 있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언론에서도 검찰의 헛발질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찰발 보도는 이어졌다. 구원파 여신도, 김 엄마, 유병언 처남, 망명시도 등 유병언과 관련된 기사가 사방팔방에서 쏟아졌다. 이는 수사에 아무런 도움 되지 못했다. ‘구원파 악마’ 만들기 보도도 이어졌다. 물론 구원파의 방해공작은 사실이었지만 구원파의 수사방해가 생중계될 만큼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후보가 찍힌다.

이처럼 널을 뛰는 검찰만큼 언론도 널을 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유병언이 부각됨으로써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 등 수많은 문제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존 관례도 벗어던지고 ‘무늬만 총공세’를 펼친 수사 당국에 따라 언론도 춤을 췄다. ‘악마 만들기’가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반론권도 무시됐다.

결국 유병언이 21일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언론은 22일 수많은 보도를 쏟아냈다. 검찰의 초동수사도 비판했다. 그 사이 국회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넣어달라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단식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씨 보다 달콤한 과육에 집중하는 언론의 행태 역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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