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없으면 예전처럼 아무 말 못하고, 그저 굽실거리면서 살았을 겁니다. 희망연대노조가 생겨서 할 말 다하고 살아요. 그게 참 행복합니다. 그동안 밀린 월급 다 받지 못하더라도 휴가만큼은, 회사로 돌아가서 이번 휴가 한 번은 제대로 떠나보고 싶습니다.”(케이블방송 협력업체 노동자)

3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18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건물에는 이들의 원청업체 씨앤앰의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입주해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인 씨앤앰은 △가입자 영업과 설치 △유지보수 △철거 해지 업무 등을 협력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뙤약볕에도 거리에 나온 이들은 바로 씨앤앰의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한 데 모인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이하 케비지부, 지부장 김영수)는 지난해 설립됐다. 2013년 케비지부는 원청 및 협력업체와 ‘포괄협약’에 합의했다. 노사상생을 목적으로 협력업체 변경 시 고용을 승계하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근절하자는 취지의 협약이었다. 원청업체가 자의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하도급업체를 쥐어짜는 것을 막으려는 방안이었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원청업체 씨앤앰의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riverskim1)
 

그러나 올해 초 임금협상을 거치면서 원청과 협력업체는 이런 협약을 깡그리 무시했다. 협력업체 사장단이 임금협상 교섭에서 협력업체 전 직원 임금의 20%를 삭감하고, 노동자들이 원청으로부터 받아 왔던 수당을 반으로 낮추자고 한 것이다. 수년째 동결된 단가와 수수료, 원청의 비정상적인 유통점 확대 방침 등으로 날로 노동조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었다. 

이에 법적으로 쟁의권을 확보한 케비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6월 10일 경고파업에 돌입했고, 나흘 뒤 현장투쟁으로 전환하며 현장에 복귀했지만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원청 씨앤앰이 산하 협력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뒤 업체 교체 과정에서 이들 조합원의 전원 고용승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일부로 노동자 74명이 해고됐다. 

임금협상의 실타래를 직접 풀어야 할 씨앤앰은 파업 과정에서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해지나 업체 변경 등을 할 수 있다’는 협박성 공문을 협력업체에 내려 보냈고, 파업과 투쟁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타 외주 업체들과 단기 계약을 체결하며 대체인력을 투입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의 쟁의권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지난 9일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할 협력업체 사장단이 도리어 18개 업체에 대한 직장폐쇄를 동시다발적으로 단행하면서 노동조합을 압박한 것이다. 씨앤앰 측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조합을 파괴해 씨앤앰 매각가를 높이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원청업체 씨앤앰의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riverskim1)
 

김영수 케비지부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직장 폐쇄 과정에서 원청 씨앤앰과 대주주가 개입했을 것”이라며 “하청업체가 원청 지시나 요청 없이 직장 폐쇄를 일시적으로 동시에 단행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씨앤앰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협력업체를 정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영업이익이 나면 대주주 빚을 갚는 데 쓰기 때문에 정작 씨앤앰엔 돈이 없다. 먹튀자본의 습성”이라며 “씨앤앰을 매각할 시기를 놓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해 어떻게든 매각가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직장 폐쇄로 600여 명이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앉아야만 했다. “상생협력 약속하고 나몰라라 웬말이냐”라는 18일 광화문 거리의 구호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울분’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씨앤앰 측은 이번 사태가 자신과 관계없는, 협력업체 노사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홍명호 홍보팀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 통화에서 “기존 인력을 최대한 승계한다는 입장은 변함없다”면서도 “기존 업체의 직원들이 ‘전체 고용 승계’를 하지 않으면 새 업체와의 고용 면담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그 결과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팀장은 “듣기로는 노조가 지나친 요구를 했고, 협력업체들이 더 이상 경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 폐쇄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매각은 매각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노조의 유무가 씨앤앰 매각가를 결정한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지부장은 “하청업체 누구를 앉혀놔도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의 ‘슈퍼 갑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존 협약을 어기고, 하청과의 계약해지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 자체가 횡포”라며 “원청의 만행은 고스란히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 품질로 이어진다. 원청이 하청을 쥐어짜는 산업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자본을 제외한 모두가 고통 속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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